다 잘할 순 없나요
오늘날 과학자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어릴 때 '과학자'라고 부르는 존재는 너무 크고 대단했다. 지금은 과학의 범주에 들어갈 것도 많고, 웬만큼 공부한 사람도 많으니 나를 과학자로 칭하기는 부족하겠구나 싶다. 무엇보다 멋모르던 때에도 떠올리던 - 아마도 주체적으로 연구주제를 정하고, 현실과는 관계없이 나 자신의 사명과 지적 호기심에 의해 골몰하고 움직이는 이미지와는 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과학을 전공한,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기업의 사업 관계성과 펀드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조금 더 학문을 추구할 것 같은 학교에서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펀드가 많으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도 있지만, 그 펀드를 다른 어딘가에서는 끌어와야 한다. 하기 싫은 것도 병행해야 한다는 소리다. 일의 수단이 과학일 뿐, 시켜서 하는 일이라는 건 일반 회사나 다를 바 없을 때도 많다. 물론, 그 사이에서 일의 의미와 보람을 찾으려면 주제는 주어지더라도 스스로 원래 내 것인 양 파고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내게 맞는 분야를 옮겨 다니다가, 만들어가다가 내 것이 된다.
연구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잡무가 많은 이 직종은, 시간관리가 필수이고 개인의 장단점이 유난히 두드러지는 때가 많다.
시간관리가 첫 번째인 이유는, 손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티 나지 않는 잡무를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결과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시간을 반응하라고 했을 때, 이를 밥 먹듯이 5분, 10분씩 변동을 주는 사람, 제 시간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직급이라 시간을 놓치는 사람처럼 다양한 경우가 있다. 기다리는 두 시간, 촘촘히 구성한 스케줄로 하루 몇 시간을 버는 사람이 있고, 같은 결과를 보기 위해 매일같이 야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실험하면서는 시간계획을 세우는 일에 시간을 아껴선 안 된다. (아, 반은 기계처럼 먼저 움직이고, 동시에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맞는지도.) 시간계획이 정교할수록 기다림이 반인 실험에선 시간을 버는 것이고, 길게 보면 무조건 이득이다. 시간을 버는 건 결과물이, 연구실적이, 돈이 된다. (그것만 보고 연구를 하는 건 안 될 말이지만, 프로젝트의 끝과 나의 위에서는 결국은 그렇게 된다..) 같은 기간 프로젝트 3개를 진행하는 능력과, 하나의 결과도 채 보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지고 마는 차이가 된다. 더 길게는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되기도 한다.
흔히 실험할 때 손 탄다고 표현하는 개개인의 테크닉은 처음은 단순히 지식, 섬세함의 차이일 수도 있고 매뉴얼이나 프로토콜을 해석하는 능력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여러 번이 반복된 실험 이후에는 개인이 얼마나 다른 조건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지, 원리를 알고 실험하는지가 좌우한다. 귀찮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실험에서는 매 스텝에서 놓친 디테일 하나하나가 쌓여 문제를 찾는 데에만 수 십 번의 실험을 다시 하게 하기도 하고, 그 사이 누군가는 단 한 번에 결과를 만들어내어서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야기한다. 같은 레시피를 주어도 만드는 사람마다 맛도, 양도, 완성 시간도 달라지는 요리처럼.
관찰과 문제해결능력, 도전의식은 중요하다. 의문을 갖고 원인을 분석하고 정보를 찾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까지가 다음단계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문제해결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경험에서 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어서 처음은 버벅대기 마련이지만 끊임없이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도전의식은 개인 성향인 경우도 많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꽤 많은 것을 부담해야 한다. 새로운 시약, 장비나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돈을 들여 또 새로운 실험에서 안정적인 결과를 구현하는 노력까지 거쳐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았을 때, 영 거기서 거기인 것만 내내 답습하거나 트렌드를 놓치고 마는 경우도 생긴다. 연구도 유행을 따라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기술에 뒤처지면 결국은 쉽게 될 일을 멀리 돌아가고 있거나, 누구도 찾지 않을 결과물을 내어놓게 된다는 데서 필요한 일이다.
연구기획과 문서작성이 탁월한 경우는 필수는 아닌 것 같으면서도 쓰일 데가 많아서 플러스 요소다. 연구실을 운영하고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서류가 필요하다. 안전과 위험물질 관리, 장비와 시설물 운용, 분양과 대여, 구매와 비용처리, 인증과 허가, 연구 과제 계획과 보고, 논문과 특허, 주주 대응과 보도자료, 각종 내외부의 실험 의뢰 및 보고 등. 대신해 줄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대체로 제출해야만 하는 운영 관련 서류들은 정해진 포맷이 있으니 빠르게 처리할 것과, 해당 분야에 대해서는 내가 가진 지식과 계획과 결과물을 이해하기 쉽고 그럴 듯 해 보이는 문장으로 설득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것조차 포장이냐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물건을 만들어 효과를 설명하고 깔끔하게 싸서 내놓는 그 어떤 것과도 다르지 않다. 함께 포함시켰지만, 프로젝트의 시작에서 개발을 어떻게 풀어갈지와 다각적 검증을 계획하는 연구기획 및 디자인은 또 다른 영역이다.
처음부터 다 잘하고 싶다.. 일을 하며 이런 능력이 요구된다고 느끼는 것, 다른 누군가와 나의 차별점을 느끼고 눈에 점차 보이게 되는 것까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금 오만해지면 어김없이 새로운 실수가 나왔고, 그 빈도를 줄여가고 내가 유동성 있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것까지가 노련함. 그것을 얻기까지는 테크닉은 테크닉대로 획득해야 하고, 늘 저변에 깔려있어야 하는 것은 배움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일이다. 이건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이 일을 하면서 계속 지니고 있어야 할 자세, 덕목 같은 것이다. 공부라면 지긋지긋하지만, 손만 제공할 애매한 테크니션으로 끝날 게 아니라면 어쨌거나 계속 배워야 한다.
도형으로 점수화되는 유형분석처럼, 개개인이 골고루 분포된 좋은 능력을 가졌다면 좋겠지만, 처음부터 완성형인 사람은.. 잘 없다고 했다. (좋은 훈련으로 빠르게 나아질 수는 있다.) 그룹 안에서는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더 나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뼈를 깎으며 겪어야만 성장이 있다. 나 혼자서 다 해낼 수 없을 때가 많아서 공동의 것에 할애해야 할 시간과 노동, 이타심까지 포함해 늘 누군가에게, 자신에게 묻고 찾고 답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