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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Apr 04. 2024

이제 진짜 내 집에 안착했다

세 번째 이사


여기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가장 긴 시간 동안 글을 더 쓰지 못한 이유, 짧은 시간의 위기와 안락함의 교차였다. 새집, 진짜 내 집에 가는 설렘에 새 물건 들일 생각을 하느라 둥둥 뜨던 기분은 돈 문제가 꼬이며 얼마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마 부모님들께는 사시면서 몇 번 겪었어도 비슷하게나마 또 겪기 싫었을 일, 우리 부부에게는 처음인 일. 이런 게 어른이 겪는 일이라면 평생 되고 싶지 않을 어른, 결혼생활 7년. 내내 무탈하던 우리에겐 처음 맞은 큰 일이었다.


한 2-3주간은 무슨 정신으로 지냈는지 모르겠다. 잠깐 사는 거니까- 하고 쉽게 생각했던 생활은 불행까진 아니었지만 삶의 질과 만족감을 꽤나 떨어뜨렸고, 누군가 물으면 기다렸다는 듯 불만이 열 개쯤은 쉬이 터져 나오곤 했으니 내 집이 아닌 곳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태도가 곧 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됨에 울적해지던 참이었다. 짐과 추위와 쓰레기에 치이면서 '차라리 애초에 편한 걸 몰랐다면 어땠을까' 하고 떠올리는, 적응의 동물이라기엔 너무나 기억에 매몰된 인간이여. 그러고선 늘 말 끝엔 그래도 여긴 산이 가까우니까- 하고 덧붙이며 나를 위로했던 곳이었다.


공간에 정을 많이 붙이는 나인지라 늘 떠날 때에도 수많은 감정이 오가곤 했지만 이토록 초조하게 짐을 싼 기억이 있었던가. 마음에 병이 들어 도망치듯 빠져나온 회사와 원룸에서조차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그 집에 이사 들어갈 때 썼던 글을 지금 와 다시 읽고서야 셋이서 마지막사진 한 장 찍지도 않고 나왔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아련한 감정도 느낄 새 없이, 짐이 다 빠져나간 자리를 쓰다듬지도 못하고 남겨둬야만 하는 큰 짐들 때문에 맺음을 채 하지 못하던 터였다. 그곳에서의 삶이 어쨌든, 모든 걸 떠나서 그 마지막이 문제였다.




일주일, 두 집에서의 꽤나 큰 생활의 격차도 더 나은 쪽으로는 적응하기 쉬운 일이라, 금세 우리는 지난 집을 잊고 새 집을 내 집으로 받아들여버렸다. 남편은 마지막 집으로 돌아오던 밤 그 끓던 속으로도 가로등 불빛 아래의 골목길을 감성 돋는 사진으로 남겼지만, 그런 감성의 그에게조차도 어수선하던 그곳에서의 생활과 그곳에서 마지막 나의 표정까지 마주할 자신도, 여유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편안하고 아늑한 곳에서 더 글을 쓸 맛이 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편안함에 너무 취해버려 쓰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분명 이사 갈 날만을 손꼽으며 가서 하고 싶은 일을 수도 없이 되뇌었는데.. 목표는 다 어디 가고, 만족감에 취한 나른함만 그득하다. 편리함과의 타협은 늘 인간에게는 유익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마음속 보기 싫은 것은 덮어두고, 예쁜 글은 쓰지 못해서 그런 거라면 이제 나를 바꾸어야 할지. 봄바람 속, 삶에 비하면 사소했던 내 이야기가 이제야 스멀스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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