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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Jan 07. 2024

그림자에 붉은 잔상이 남는다

내 눈에만 그랬다


해가 유독 밝은 도시에 산다.

뜨는 해는 한낮처럼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감각을 찔러대고, 지는 해는 너무 커서 잔인하게 떨어지는 곳. 뜻하지 않게 그냥 지나가는 길에라도 우연히 고개를 들면 펼쳐지는 붉은 계열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 곳. 어차피 활기찬 밝음보다 은은하게 물들이며 불태우는 노을에 사색을 얹는 걸 좋아하니 이것만큼은 서쪽 끝자락에 사는 게 내게 맞는 모양이다 싶지만, 사실 이 미묘한 햇빛의 각도차이를 불편하게 느낄 때가 많다.


해가 뜨는데 동쪽으로 차를 타고 달릴 때, 넘어가려는 해를 보며 서쪽으로 걸어야 할 때. 이 도시는 왜 하필 큰 도로가 다 동서로 나 있어서, 감히 인간으로서 이기지도 못할 해를 시야 정면에 두어야 하거나 그림자가 짙도록 등 뒤에 두어야만 하는지. 덕분에 여름엔 효과적으로 몸의 앞뒤를 고루 구울 수 있었고, 따스함이 아닌 따가움과 서늘함의 감각이 내게서 공존하는,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겨울 아침이었다. 날은 꽤 추웠고 햇빛도 강할 리 없건만, 아직 중천에 뜨지 못한 해라도 나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이 내 시각을 통제할 정도의 힘은 있었던 건지. 건물의 그늘들, 어두운 골목 사이 보이는 모든 것들이 돌연 몇 번의 깜빡임 사이 붉게 느껴졌다. 길가의 돌멩이 하나까지 시야에 들어오더니, 어둔 그림자 속 숨었던 붉은기가 눈을 감아도 잔상으로 짙게 남았다. 어두운데 아프게 눈이 부셨다. 붉은 돌, 이상했다. 해가 뜨고 있었다.


그런 것만 보일 때가 있다.


너를 보는 내 눈에만 넌 붉게 보일까.

여기서 지내는 동안 내가 보는 것은 사실 다 붉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니, 넌 못해도 당분간은 이곳의 돌일 테니 적어도 같은 빛을 보는 이 동네 사람들에겐 똑같이 보일지도..라는 당찮은 생각을 하며 나는 붉은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한두 시간 새 달라진 해에 곧 그 사실은 잊어버렸다. (아, '해'는 달라진 적이 없다. 보는 나에 따라 달라질 뿐)


보이는 것은 이토록 사람을 현혹하기 쉬웠다. 감각에 의존하고 살지만 그것은 다 믿을 건 못 되었다. 보이는 게 생각이 된다는 게 점점 두려워지는 요즘.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 하고, 관심두지 않은 건 허투루 보는 나 자신을 점차 깨달아가지만, 당연히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 없는 한계 있는 인간임에도 너도나도 그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너와 나는

오늘, 이곳에서, 무슨 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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