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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Apr 07. 2023

논설문을 엄청 썼으니까 알지,

살면서 내 논리는 엄청 바뀌었다는걸.


우리는 학교다닐 때 도덕과 윤리를 배운다. 법도 아니고 도덕인데. 다들 도덕책만큼만 지키고 산다면, 갈등이란 건 없을텐데. 아닌가, 강제성이 없어서 지키기 어려운건가.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도 많지. 어떤 논제에 대한 찬반을 놓고, 뉴스를 보고,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우리는 다툰다. 이 과정은 당연히 정당하고 필요한 싸움이다.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교 때까지 논설문을 정말 많이 썼다. 논설문을 써야할 일이 - 대회가 있으면 선생님들은 날 찾았다. 거기서 거기였던 단골 주제는 사실 몇 가지 되지 않아서 주장의 근거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참..공장에서 찍어내듯이도 썼다. 토론에도 꼭 참석했다.


논설문이니까 딱히 문장력이, 표현이, 감성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 아마 특별히 잘 써서가 아니라, 그 때 학생 수준에 잘 먹힐만한 논설문의 구조를 조금 잘 알았던 것 같다. 많이 쓰다보니 논리는 점점 더 다듬어지고 정교해졌다.


토론할 때 어떤 주제는 학생들에게 이미 찬반이 많이 기울어있기도 했다. 그래서 가위바위보에서 지면 내 의견과 다른 주장을 펼쳐야만 했다. 그러다보면 실제로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는 현실은 잘 몰랐고, 때묻지 않았고, 내 마음이 지키고 싶은 가치만 택하면 되었으며, 생각은 좀 더 유연했다.


안락사, 환경 문제, 일회용품 사용, 통일, 자살, 동성애, 사형제도, 낙태, 두발 자유화, 이성 교제, 체벌 금지, 부의 재분배, 님비 현상,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리 보호..


그런 주제에는 빠삭했던 내가 나이가 좀 먹어 뉴스를 보다가 문득 씁쓸해졌다. 학생이던 시절 나의 시각에 의하면, 아이들의 이상적이기만 한 도덕론에 대놓고 반대를 하는 건 늘 평소에도 지극히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어른이었다. 그 때의 내가 펼치던 주장에 대부분 반대의 의견을 갖게 된 지금, 그러면 나는 꼰대가 된 걸까.


세상이 그렇게 녹록한 줄 아느냐, 네 말대로만 될 것 같으면 세상 좋겠지, 그렇게 하려면 돈이 이만큼 필요하고, 이건 어쩔 것이며, 네 말대로 했을 때 이 문제는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


물론, 이런 반대의견도 당연히 건강하게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 세대가 미처 다 넘어가지도 않은 단시간에 많은 가치관이 반대가 되는 건 정상적인 과정이라 생각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본 범위에서 나만 그런게 아니었기에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은 아마 정반합 중 '반'의 끄트머리에 속해서 그럴거라 생각한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더 나아가기 위해 취한 제도와 선택들이 오늘날의 개인주의와 물질주의, 다양성의 세계와 맞닥뜨리면서 본의가 변질, 이용되고 만다. 이제 우리는 '반'의 부작용들에 시달리고 있다. '합'을 찾아야 할 우리는, 우리가 직접 겪은 것이 눈 앞의 이 부작용 하나라고 해서 다시 한 번 급진적으로 '정'의 끄트머리로 돌아가는 잘못을 저질러선 안 된다.


정말 어른들의 말대로 삶이 녹록하지 않은 건 맞다. 그런데, 30대가 더 세월에 닳고 닳은 50대만큼의 회의론만 가지고 산다면, 그건 또 맞는 사회일까. 어른들은 아무리 현실이 만만치 않은 것이라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더라도, 가장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서 지켰으면 하는 가치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사회의 더러움은 크면 가르치지 않아도 절로 알게 되고, 기본적인 가치도 제대로 배우지 않고 더러움에 맞닿은 아이들은 나중에 되돌아갈, 스스로 선택할 여지가 없다. 옳고 그른 건 그 아이들이 저희들의 세상에서 판단할 일이고, 우리는 누가 생각해도 가장 바르고 바른 것만을 가르쳐야 한다. 그게 도덕과 윤리를 '교육'하는 목적이라 생각한다.


아마 20년이 넘게 지났으니 여전히 답이 없는 저 사회문제들에 더해 더 많은 논제들이 있을 것이다. 도덕과 윤리 교과서도 조금쯤은 바뀐 관점을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내 바뀌고 만 가치들은 내 생에 다시 되돌려질 가능성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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