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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Apr 20. 2023

나는 시인도 될 수 없고, 소설도 쓸 수 없다

나의 글을 보는 나의 시각


글을 쓰며 늘 생각한다. 왜 난 좀 더 아름다운 글을 쓰지 못할까. 사랑과, 색감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글을 쓸 수 없을까. 왜 간략하고 많은 의미를 머금은, 곱씹게 만드는 것을 빚어내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남의 글을 보며 가끔 어쩜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 같은 예쁜 표현이 있을까, 세상에나 어디서 저런 단어를 수집했을까, 그 이의 통찰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한다. 혹은, 대단치 않아도 담백하면서 끝내 다 읽게 만드는 맛깔스러운 글도 많다.


사람은 저마다 생긴 것이 다르다. 마음과, 생각과, 경험이 글을 만든다. 내 글은 길고, 장황하고, 그냥 적절한 느낌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름대로 아는 단어들을 이리저리 겹쳐 입체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지만 잘 전달되는 건지는 모르겠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덕지덕지 아이가 열 장씩 덧붙여둔 스티커들처럼, 그저 두터워진 그 두께를 두고 입체적 표현이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미건조하고, 회색같고, 가끔 신랄하다. 좋은 의미로 속이 쓰린 글을 쓰고 싶을 때도 있다.


많은 것을 쓰다보면, 당연하게 다른 형태와 다른 표현도 찾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주구장창 슬프고 힘들고 비판하고 싶은 것들만을 찾아 썼고, 그게 아니면 차라리 기술적인 것을 논하는 딱딱한 글이 편했다. 내 속에서 나온 것들이 눈으로 직접 꺼내놓고 보니 온통 다 무채색이라 '난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구나.' 하고 단정지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괜히 익혀져버린 속독때문에 가끔 입 안에서 녹는 것조차 아까워 굴려 먹지도 못하는 사탕처럼 내내 두고 보고싶은 글을 잘 읽지 못한다. 시를 사랑하지만 시를 잘 읽을 수는 없는 사람. 읽지 못하니 공부가 부족하고, 내 눈에 한없이 멋있지만 절대 내가 시인이 될 수는 없다.


조용한 이야기꾼인 내가 소설을 써보려 해도 잘 되지 않은 것은, 내 감상은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지만 의외로 상상력은 제한적이라거나, 내 감정은 끝없이 파고들지만 남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엔 생각보다 소질이 없어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남의 마음을 잘 모르는 나는 소설도 쓸 수 없다.


그나마 내 눈에 보인 것에 대해 순간적으로 속성을 뒤틀거나 머릿속에 흘러가는 것 중 무언가를 겹쳐보곤 하는 쓸데없는 망상 같았던 습관이 나에게 와선 에세이가 되었다. 절대 그것이 쉬워서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 망상도 꽤나 많은 시간을 들여 하고 또 하고 붙잡고 정돈해야 글이 된다.


나에게 잿빛은 감정이 먼저였는지 언어가 먼저였는지는 모른다. 감정은 느끼는 당사자에겐 뚜렷하지만 무형의 것이고, 표현은 형태로써 남에게 전달할 수단이 되지만, 정해진 것이 없다. 그래서 글을 쓰는 데 감정이 물론 선행이지만 언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내 글에 색이 없다면, 언어의 색이 감정의 색을 흐린 것일 수도 있었다.


글을 쓴 것이 꽤 오래되어서, 최근에는 매일같이 한 편씩을 썼다. 매일 쓰면 더 나은 건 맞지만, 어쨌거나 내 글을 제일 많이 보는 건 나라서 고갈되지 않으려면 충전도 해야한다. 쓸 것과 표현이 고만고만하면 내가 먼저 질려 나가떨어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새삼 업으로 하는 분들은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으며 또 얼마나 고된 작업을 하는 것일까 싶다.


시도, 소설도 못 쓸 나지만,

즐겁게, 오래, 잘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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