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에게
안녕. 한 달 만이네. 끔찍한 꿈을 꿨어. 너무 생생해서, 어린 시절 악몽처럼 오래 남을 것 같아 그게 고통스러워. 눈을 뜨자마자 울었어. 새벽은 참을 만한데, 아침은 여전히 견디기 어렵네. 오늘 아침은 누군가가 날 덮친 것처럼 무겁더라. 넌 잘 자고 있을까. 그저 살아가고, 별 의미 없이 잠에 들고, 더는 아프지 않니. 이게 맞는 결말이라며 후련했을까. 아니면, 지나온 시간까지 지겨워할까. 우리의 끝을 글로 적는 데 한 달이 걸렸어. 그걸 텍스트로 남기는 게 무서웠거든. 너와의 끝을 쓰는 나 자신을 마주하기 힘들었어. 근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쓰는 것밖에 없더라고.
나는 아직 이렇게 살아. 한 달이 지났고, 오히려 잠드는 게 더 어려워졌어. 처음 일주일은 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그 이후엔 붙잡히지 않는 일들을 이것저것 해보다 결국 한계를 느꼈던 것 같아. 그냥 먼저 무너지기로 했어. 요즘은 예전 체중으로 돌아왔어. 별로 티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별을 떠올릴 때면 그마저도 이유가 되었던 걸까 싶더라. 지금의 나는, 나조차도 별로라고 느껴. 널 만나며 최고치로 올라 있던 모든 욕구들이, 이제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어. 그렇게 널 귀찮게 하던 게 무색할 만큼 어이없게도 조용해졌네.
살고 싶어졌어. 예민하고 불안한 기질을 핑계 삼아 방치했던 나를, 이제는 뜯어고치고 싶어. 다음에 내 옆에 있을 사람은 조금 더 편했으면 좋겠거든. 더는 소중한 사람을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노력하지 않았던 작은 관계들의 끝에 너를 만났고, 나는 아직 많이 서툰 20대였어. 겁이 많았고, 그래서 오히려 무모해졌고, 그 덕분에 널 만났어. 돌이켜보면, 난 꽤 외로웠던 것 같아. 그런데 네가 말도 안 되게 나한테 와줬지. 1년 반의 관계가 끝나고 나서야, 그 시절을 후회하게 됐어. 후회투성이야. 네가 오기 전에 좀 더 나를 다듬었다면, 내가 연애 몇 번쯤 겪은 후에 너를 만났다면, 우린 좀 더 괜찮은 결말을 가질 수 있었을까. 물론 이 글은 이별의 원인이 내게만 있다는 자책은 아니야. 절대 한쪽이 모든 잘못을 떠안을 수는 없으니. 단지 너의 실수는 내 마음으로 감싸질 만큼이었고, 나의 실수는 너에게 그런 여유를 주지 못했을 뿐이야. 아니면 애초에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고. 하지만 너의 잘못을 나열하는 게 아닌, 내 감정을 털어내려고 해. 어차피 넌 멀리 갔고, 난 아직 그 자리에 있으니까. 내가 조금이라도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직접 뛰는 것밖에 없으니까.
왜 나는 네가 몇 년 더 살았다는 것, 몇몇의 관계를 더 겪었다는 이유로 기대만 했을까. 처음에서 헤어나오지도 못하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만 봐주길 바랐을까. 정작 나는 그러지 못했는데. 네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의 첫 만남 이야기를 왜 그렇게도 꺼내놓았는지 이제는 알까. 조금은 이해가 될까. 아니면 조금의 복기도 하지 않고 그저 쉬고 있을까. 사실 지금 난 딱 죽을 것 같아. 번호를 바꾸고, 계정을 탈퇴했어. 내 예전 핸드폰에는 우리가 함께한 기록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너무나도 약한 사람이라 그걸 직접 지울 만큼, 네가 너 자신을 소개하던 말처럼 ‘이별하면 정말 끝’의 사람이 되지 못했네.
냉장고에 붙여두었던 우리 사진들을, 싸우고 떼어내던 나를 보고 상처받은 얼굴로 다시 붙여주던 네가 아직도 기억나. 결국 다시 떼어내는 건 내 몫이었고,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 닳아 없어지는 건 사진만이 아니었구나. 너는 그렇게 닳아서, 정말로 없어졌네. 내 마음만 안아달라고 했던 이기적인 행동의 결과겠지.
애초에 너에게 나는, 죽을 때까지 그런 사람일 거야. 평생 7살이 어린, 아무 경험도 없는 25살에 멈춰 있겠지. 그래서 난 이렇게나 이별에 능숙한 네가 죽을 때까지 밉고 원망스러울 거야. 결국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내가 결국은 이 결말을 봤고, 그게 내 불안을 만들었었어. 한 번은 사랑해 주지. 한 번은 정말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넌 속도가 달랐다고 했지만, 결국은 속도가 아니었어. 너도 그걸 이제 알 수 있을까. 인정할 수 있을까?
미안해.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게, 너에겐 너무 컸다는 걸 이제야 알아. 닳아가는 널 알아채지 못하고, 내 것이기만을 바랐던 걸 후회하지만 그래도 살아가겠지. 네가 언젠가 무뎌지겠지. 낭만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마지막 낭만이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낭만은 무슨, 넌 나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사람인데. 이렇게나 이별에 익숙한 사람인데. 이렇게 아픈 거였으면 덜 낭만적일걸 그랬다. 난 너처럼 능숙하지 못해서, 이별이 두려워서, 여기에 널 털어두고 가보려고 해.
고마웠어. 진심으로. J로부터.
“나라고 네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아?”
“끝내자고 한 건 너였어. 기억 안 나?”
“너한테 화가 나서 그랬던 거지. 더는 널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고.”
- 프렌즈, 로스 & 레이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