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온도차
“그만하자. 우리 서로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사랑받고 있다고는 못 느끼잖아.”
“넌 참 괜찮은 여자야. 상위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점들을 갖고 있어. 내가 그릇이 작아서 안 되는 거야.”
“생각 정리해서 카톡으로 보내든가, 아니면 이 전화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
“우리 관계에 대해 누구한테 얘기 좀 해봐. 나도 그럴 테니까. 근데 넌 항상 네 입장만 있고, 남 입장은 없지.”
한때는 ‘권태기’란 밥 먹는 모습조차 싫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정이 식고,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치스러운 지점까지는 절대 가지 않을 거라 믿었다. ‘마음이 식는다’는 시시한 명제는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았으니까. 미치도록 촌스럽더라도, 끝까지 사랑하려 했다. 하지만 권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건 마음이 식는 일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든 불만이었고, 서로의 결핍이 어긋나는 지점에서 벌어진 균열이었다. 감정이 더 크고 단순한 사람은 사랑 하나로 버틴다. 그 사람 하나면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쌓이는 감정은 결국 몸을 아프게 만들었다. 우리는 1년 반을 만났다. 뜨겁고 벅찼던 건 처음 석 달. 돌이켜보면, 그 이후로는 진작 끝났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감정을 운명처럼 여기며, 사랑이라는 말로 관계를 연장했고, 점점 더 서로의 단점을 들여다보게 됐다. 나는 서운함을 쌓아가며 네가 주는 방식은 외면한 채, 처음의 모습과 비교하며 외롭다며 한탄했고,
“나는 너에게 받는 게 없어서, 더 줄 게 없어. 너한테 줄 게 남아 있지 않아.”
너는 정말 힘들다고 했다. 코너에 몰렸다고, 자기를 좀 봐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네가 아닌 걸까? 왜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만 다그치는 걸까? 원망했다. 왜 줄 게 없냐고.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무작정 참았다. 이 불편한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랐고, 순간의 감정만 풀리기를 원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사과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사과는 더 이상 회복이 아니었다. 반복될수록 지겨운 굴레가 되었고, 감정의 한계에 다다르자 결국 극단적인 표현이 터져 나왔다. 때로는 나도 그걸 제어하지 못했고, 울부짖었다. 그 순간조차 너는 지나치게 이성적이거나, 반대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극단으로 치달았다. 나는 그 낯선 온도차에 허탈했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나는 늘 돌아갔다.
“미안해. 난 오빠 없으면 안 돼. 좀 예쁘게 봐주면 안 돼?”
나는 끝까지 내 기준으로 사랑했고, 너에게 무력감을 안겼다. 매번 죄인이 되면서도 끝을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어쩌면, 그게 가장 이기적인 일이었다.
“조금만 참아주면 안 돼? 그렇게 힘들어? 왜 맨날 말로 모든 걸 설명해야 해? 왜 사랑은 표현이 아니라 해명이 되어야 해?”
술기운과 감정이 섞이면 우리는 또 무너졌다. 나는 늘 사랑을 갈구했고, 너는 점점 텅 비어갔다. 그게 우리의 이별이었다. 넌 내가 주는 사랑과 존중을 체감하지 못했고, 나는 네가 주지 않은 표현들에 상처받았다.
“넌 나한테 준 게 뭐야? 참는 것 말고. 말 좀 해줘.. 나도 알고 싶어서 그래.”
한때 반짝였던 관계에서 가장 기억나는 문장이 이거라니. 그 말은, 진심으로 관계를 붙잡고 싶어서 던진 질문이었겠지. 그렇게라도 이어갈 원동력을 찾으려는 사람이니까. 절박했지만, 잔인했다. 넌 나를 위해 하는 것들을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에서 솟구쳤다. 그게 분노였을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 감정이 감당되지 않을 정도가 되면, 정말 괴로웠다. 왜 사랑만으로 사랑이 완성되지 않을까. 나는 너의 눈빛 하나에도 아쉬워하는데, 넌 나에게 무엇을 자꾸 달라고 하는 걸까. 그러고는 되묻곤 했다.
“참는 건 노력 아니야? 죄인처럼 고개 숙이는 게 쉬워 보여? 얼마나 큰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지, 알아?”
어느 순간, 한계가 보였다. 내가 쉽게 넘기는 상처들이 너에겐 가슴 깊이 박혔다.
“왜 이것도 또 싸움이 돼? 나도 상처받거든. 근데 난 그냥 사랑으로 덮는 거야. 오빤 나 사랑하지 않아?”
나는 예민하지만 단순했고, 너는 예민하지만 지쳐 있었다. 나는 극적인 순간조차 쉽게 잊었고, 너는 금이 간 마음을 오래 품었다. 애써 덮고 있던 균열은 여름이 오기 전, 터졌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참 애썼다. 다만, 끝까지 서로의 자리에서만 바라보고 있었을 뿐.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빠르게 서로에게 빠졌고, 결국엔 그 다름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해 놓아야만 했을 것이다. 사랑만으로 붙잡을 수 없는 시기가 있고,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걸 이제는 인정하려 한다. 사랑은 줄 수 있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라, 전달되는 방식이 어긋나면 무너진다. 나는 이 감정을 오래 품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껴안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진짜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방식으로 안아야 한다는 것도. 사랑은 결국 닿는 게 아니라, 전해지는 것이다. 분명히 서로에게 닿았던 순간이 있었기에 시작되었지만, 끝내 같은 온도로 전할 수는 없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너 말고 또다시 구구절절 다른 여자한테 말할 자신이 없어. 내 그런 얘기 듣고 보고도 싫어하거나 불쌍한 게 아니라 지금 너처럼 담담히 들을 수 있는 여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해. 해수야. 만약 그런 여자가 또 있다면 제발 알려줘. 내가 너한테 많이 매달리지 않게."
- 괜찮아 사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