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표정 하나에 사랑과 이별은 시작된다.
나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고유한 청취가 묻은 서사, 온기가 있고 감정의 심연을 건드리는 솔직함. 서툴고 울퉁불퉁해서 오히려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들에 마음이 오래 머문다.
한때는 사랑 타령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내가 직접 할 일은 없으니까.”라며 웃어넘기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더는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 영화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네가 떠오르니까. 나는 결국 사람을 최우선에 두는 사람이었다. 사랑을 가장 오래 부정한 사람은, 어쩌면 가장 오래 기다려온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징글징글한 사랑 영화는 오래도록 씹는 맛이 있다. 전부를 아는 서로만이 나눌 수 있는 그 자연스러운 수치심을, 정말 이길 수 있는 게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유독 아끼는 영화가 있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글마다 삽입된 사진은 이 영화의 장면이다. 고 장진영 배우를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유난히 오래 남았다. 인간만이 가진 치졸한 솔직함을 미화 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게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 영화를 너와 처음 나눈 날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하고 새로운 사랑이었다. 기꺼이 각자의 것을 내어주었고, 서로를 통해 전혀 다른 세계를 알게 됐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보며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아, 이 사람. 내 새로운 세계구나.’
그건 단순한 호감이 아니었다. 감정의 결을 정확히 알아차린, 아주 드물고 귀한 순간이었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정말 소중했던 사람은 손에 꼽았다. 그중 한 사람과, 단지 호기심이 닿았던 관계를 동시에 떠나보낸 적이 있었다. 무거운 마음을 실었을 때 상대가 나를 다르게 볼까 두려워 움츠러들던 시절, 폐쇄적이면서도 무모했던 그때,
너를 만났다. 좋은 사람이었다.
연인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편안했고, 즐거웠으며, 특별했다. 너의 방식은 나를 안심시켰고, 방어적이던 나는 너에게만 자연스러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방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너는 내가 중요한 것보다, 네 옆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이래야 된다고 정해놓은 게 있잖아.”
이 말만은 꼭 정정하고 싶었다.
아니야. 그건 너에게만, 너이기에 바랐던 거야. 그 기대가 널 숨 막히게 했을까 봐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서로 다른 걸 바랐던 거니까, 누구도 악인은 아닌 걸로 하자. 우리는 글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서로만 알고 있는 것들, 서로에게만 괜찮았던 것들을 기꺼이 나눴다. 그러나 나누기만 해서는 서로를 안을 수 없었다. 나는 너로부터 안정되었지만 결국 다시 불안해졌고, 너는 나에게서 새로움을 찾았지만 결국 익숙한 것을 다시 찾았다. 그래서 나는 너를 놓았다. 놓는다는 건 포기가 아니라, 감당의 끝이었다.
섹슈얼한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처음을 시도했을 때, 내 모난 구석들이 너를 다치게 했고 “이 관계도 끝이구나.” 싶었지만, 너는 그런 나를 오히려 안심시켰다. 마음을 내밀었고, 그래서 나도 너에게 속할 수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닌, 너의 옆에 있는 걸 선택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청춘 남녀가 몸을 섞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날, 나는 너를 진짜로 받아들였다. 거의 매일 만났지만 손을 잡고 다니진 않았던 우리가 어느 순간, 완전한 연인이 되어 있었다.
“유은을 만나기 전의 나는 기억나지 않아. 넌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줬어. 널 보면서 ‘이런 것도 있구나’, ‘아, 또 이런 것도 있구나.’ 항상 신기해. 널 만나면서 모든 게 새로워.”
처음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시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온전한 처음이었다. 서로의 공간이 점점 편해졌고, 무언가가 천천히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블랙 맨투맨에 뿔테 안경을 쓴 너. 영화에 몰입한 너의 얼굴을 영화보다 더 오래 바라봤다.
“어떡해.. 나 뭐지?”
드라마처럼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어느 남자의 표정 하나에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은, 정말 찰나였다. 그래서였을까. 그토록 아프게 될까 봐, 덜컥 두려웠다. 지금 이 천진난만한 우리가, 서로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쌓아가게 될까. 하지만, 기약 없는 미래를 걱정하기엔 눈앞의 너는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결국 우리의 마지막 메시지는
“오빠, 문 한 번만 열어줘.”
나의 매달림으로 끝이 났지만, 그 사이의 시간 속엔 있는 그대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했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서로의 칼날을 묵묵히 받아내며 지켜낼 강인함은 없었다. 그저 존재 자체를 원했다는 건, 오히려 원하는 바가 분명했기에 그 이상은 감당할 수 없었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는 가끔 나 없는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다 책임질 테니, 나만 믿고 오면 돼. 사랑해.” 욕설을 섞어가며 말하곤 했다. 나는 너의 그 주사가 참 좋았는데.
하지만 너는 끝내 내 모난 부분을 감당하지 못했다. 너의 결심은 단단했지만, 나는 그보다 더 셌다. 서로의 스택이 달랐다. 넌 날 감당하기엔 상처가 많았다.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평생 몰랐을 것들을 너는 나를 통해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가끔 날 후벼 파듯 아프고, 지하 깊숙이까지 끌고 내려가곤 한다. 우리의 첫 메시지는 “보고 싶어.”였다. 네가 핸드폰을 택시에 두고 내렸던 날이었다. 내가 처음 너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던 날은, 너의 집 비밀번호를 처음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엔, 닫힌 그 문 앞에서 내가 너를 기다리게 될 줄이야. 우리 둘 중 단 한 명이라도 알고 있었을까. 그 문이 언젠가 끝이 될 줄은.
처음은 언제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시작된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 것처럼. 그리고 끝은, 모든 걸 나눴던 한때 서로이기만 했던 공간에서 철저한 각자가 되어 기다리다 결국 혼자 포기하는 일이다. 마치 처음은 우연처럼 다가오지만, 끝은 언제나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선택으로 찾아온다. 무엇이 그때와 달라졌을까. 달라진 건 없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새로운 세상을 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 세계는 어느새 우리에게 너무 무거워졌다. 결국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래 있던 자리, 잘 어울리는 자리로. 우리는 서로의 터전을 만들지 못한 채 잠시 머물다 돌아간다. 사랑이 전부였던 시절을 지나,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시간을 지나면서 마지막이 시작된다. 사랑이 그렇게 시작되듯, 이별도 하나의 시작이다. 우리는 서로의 세상을 ‘나누기만’ 했지 ‘품지는’ 못했으니까. 시작은 이렇게도 가볍지만, 끝은 결국 품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며 또 다른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이다.
사소한 아픔조차 크게 부풀려 상처받던 나에게, 너는 어떤 마음을 주고 싶었을까. 너 역시 너의 모든 것을 주고 싶었겠지. 나는 안다. 너의 많은 것을 나에게 내어줬다는 걸. 하지만 우리는 서로 가진 게 너무 달랐다. 연애는 그렇게 끝난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볍고도, 무거운 마음으로. 결국은 함께 갈 터전을 포기하는 일이다. 다른 이유는 부록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두 사람은 스스로의 의지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모든 걸 쏟아붓는다. 그런데 결국, 그 세계가 무너지는 이유도 그저 의지의 소진일 뿐이다.
그래서 연애란, 한순간에 무너지는 하나의 세계 같다. 누군가에겐 짓고 무너뜨리는 일이 익숙할지도 모르지만, 처음으로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지어본 사람에겐 그걸 떠나보내는 일이 참 어렵다. 하지만 이 처음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면, 이전보다 덜 화려하지만 더 단단한 세계를 다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아닐까. 우리의 가볍고도 무거운 마지막이 아닐까.
“내가 어떻게 널 버려...”
—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