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하고 싶지 않은 일을 목격할 때가 있다. 은행에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직원에게 당신이 안내를 잘못해서 내가 낭비한 한 시간을 피해 보상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봤다. 가만 보니 직원은 어떤 업무에 일반적으로 필요한 서류를 안내했고, 막상 서류를 가지고 오니 그 아저씨는 좀 더 특수한 경우였나 보다. 그 사람은 자신이 낭비한 한 시간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한 시간의 헛걸음에 큰 충격을 받은 유약한 정신의 소유자는, 정신에 비해 육체가 너무 건강한 나머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일정하게 큰 목청을 유지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피해보상을 받아야 할 소중한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는데도 물론 조금의 조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 전엔 어떤 사람이 우체국에 등기를 찾으러 가서는, 자기가 오늘 연차를 쓰고 등기를 찾으러 왔으니 여기까지 온 기름값과 연가 쓴 비용을 보상해달라며 10만 원을 요구하는 걸 봤다. 집에 사람이 없으면 집 앞에 두고 가거나, 집 앞에 못 두고 가는 등기라면 사람이 있는 시간에 와야지 왜 자기를 여기까지 오게 만드냐는 거다. 글쎄 집배원이 지가 몇 시에 집구석에 박혀있는지를 어찌 알 것이며 또 왜 알아야 하며, 설령 안들 어떻게 한 명 한 명 집에 있는 시간을 맞춰 방문하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히 본인도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무슨 상관인가 몇천 원짜리 등기 한 장으로 10만 원을 요구할 수 있다니 워런 버핏도 울고 갈 수익률인데.
때론 갑질이란 말이 너무 고상하고 우아하고 비겁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속에서 일어나는 대분의 갑질은, 따지고 보면 갑도 아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인간은 늘 을은 커녕 병,정, 졸 .. 아 모르겠고, 특별한 상황속에서 순간적이고 상대적인 우위를 이용한 멍청한 폭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그런 걸 갑질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방송국에서는 솔선수범해서 갑질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다른 말을 만들어야 한다. 그건 그냥 '쓰레기질' '상스러운 짓거리' '영혼 살해범' 뭐 그런 좀 더 솔직하고 직관적인 언어로 지칭하고 사용해야 한다. 방송에선 기자들이 앞다투어 마이크를 들이대며 "그런 쓰레기질을 하신 기분이 어떻습니까?"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런 상스러운 짓거리를 하실 때 죄책감은 없으셨나요?" "민원창구 직원의 영혼을 살해하신 것에 대해 할 말 없습니까?" 이런 식의 장면들이 나와야 한다.
우린 때로 우리의 치부를 이야기할 때, 너무 추상적인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