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의 숟가락이라 이겁니다.

비싸진 않아도 단단하긴 해야 할 텐데.

by 기묘염

아이와 마트에 갔다. 마트 입구에서 학습지를 홍보하시는 분들이 풍선을 나누어주고 계셨는데 아이가 덥석 풍선을 집어 들었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나는 풍선 값을 지불하기 위해 잠깐 멈춰서 큐알코드로 입장하는 행운의 룰렛을 한 판 했다. 이런 작은 풍선 하나에 내 전화번호를 지불하는 건 불공정거래처럼 느껴졌으나, 또 달리 생각하면 이깟 전화번호 하나를 얻기 위해 주말 아침에 여기 나와 풍선을 준비했을 저분들이 불공정을 호소할지도 모를 일이다. 행운의 게임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룰렛은 돌고 돌아 가장 좋은 것 옆에 있는 가장 소소한 것에서 멈췄다. 색칠공부 책자였다. 물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가장 소소한 것을 얻는 대가로 잠깐 입구에 멈춰 서서 경청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아이는 몇 살인가요?"

"네 살이요. "

"공부는 언제부터 시킬 생각이세요?"

"... 나중에?? 아직 세 돌도 안 지나서요"

"지금이 어학에 가장 적기인 거 아시죠? 요즘은 영어랑 중국어는 지금 다 시작해요 "

"아.. 네.. ( 내 영어실력이 이따위인 건 내 지능 탓이 아니었다. 적기를 놓쳤을 뿐... 엄마 듣고 있나?!)"

"애들은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냐에 따라 정말 다르게 자라잖아요"

이분들은 옆에 있는 사람이 자기 아이에게 비싼 옷을 사주는 것에 자극받아서 굳이 아이에게 필요도 없는 트렌치를 모방 소비했던 나를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그날 저 보셨나요?"라고 물을 뻔했다.


'어떤 환경'을 '만들어 주냐'에 따라 '정말 다르게 ' '자라' 다니. 그건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네기에 부적절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경쟁심리와 죄책감과 책임감을 묘하게 자극하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고 느끼지 않아도 될 죄책감을 만들어내며 고민 없는 책임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는 얘기다. 부모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어떤 환경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그것은 최선 후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결과다. 본인의 의도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모든 부모가 어떤 환경을 임의적으로 조성할 수 있을 만큼의 형편을 갖춘 것도 아니다. 모든 아이들은 다 귀하고 거의 모든 부모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저런 식의 화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선량한 의무감과 책임감을 채찍질해 코너로 몰고 가는 말들과 타인이 지닌 감정의 크기에 획일적인 기준과 잣대를 들이미는 무자비함 말이다. 그분들을 탓하는 건 아니다. 그분들이야 그저 가장 효과적인 영업비법을 썼을 뿐이고, 그 영업은 또 그분들의 사랑을 실천하는 밑천이다. 내가 늘 주장하는 단 하나의 믿음. 누구에게나 목구멍은 포도청이기 때문이다.

다만 , 그런 식의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내가 상처받지 않고 소신 있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게 된다. 그런 말들에 휘둘리지 않고, 나는 내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그걸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서부터, 만약 그렇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으로 뻗어나가는 길고 넓은 가지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세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공부를 권하는 세상에서, 영어와 중국어보다 선행되어야 할 학습의 기준을 나는 알고 있는가. 어디까지가 자의이고 어디까지가 타의인지 나는 구분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권유이고 어디까지가 강요인지 잘 알고 아이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가. 나는 아이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인지. 아이를 얼마나 '다르게 자라'게 할 것인지. 그것이 아이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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