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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Apr 07. 2022

오!캡틴 마이 캡틴

도대체 뭘 이겨내고 뭘 포기하시는 겁니까. 

파이널리!!  과장님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을 하고 목이 잠기고 직원들을 한바탕 휩쓸었던 그 증상이었다.  드디어 니 차례구나.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어디 한번 보자  싶은 못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분은 언제나 내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번에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나를 한 방 먹였다.  그래 코로나 따위가 그분을 대적할 순 없지. 사실 코로난지 아닌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분명 코로나인 것 같긴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다.  

'검사를 하지 않으면 코로나도 안 걸리는 거잖아요'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밀폐된 사무실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기침을 해대면서도 절대로 자가 키트는 꺼내지 않았다.  일주일의 공가가 보장되어 있는데도 굳이 그렇게 한 것은 하나의 메시지였다. 확진자의 증가로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평소 무척 못마땅히 여긴 과장님의 상징적인 행동인 것이다.  가라사대, 그냥 참고 견디면 일할 수 있는데 굳이 검사를 해서 없는 병을 만들잖아.라는 것이 평소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일주일 쉬는 게 아니꼬워 죽겠다는 것을 온몸으로 에둘러 말한 거다.  이게 돌려 말했다고 할 수 있나 싶겠지만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 그게 아무리 재채기 나올 만큼 우스운 권력이라도  도무지 돌려서 말할 줄 모른다는 거다.  이 작은 집단에서 이 작은 권력을 가진 사람도 그렇다. 본인의 속내를 드러내도 아무도 문제 삼지 못한다는 자신감이 은연중에 표출되는 것 같다.  본인이 본인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견디고 있는 그 병균이 밀폐된 사무실에서 누군가의 콧구멍으로 들어가  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제7 안식일을 선사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뇌를 마비시키는 것이 바로 그 권력의 가장 무서운 점이기도 하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하나밖에 없다.  그저 행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해맑게 자가 키트를 열심히 콧구멍에 들이미는 것. 너는 참아라 나는 못 참는다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때론 그룹 내에서 비교적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직급으로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면  인간으로서의 나와  어떤 직급으로서의 내가 분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혼돈의 순간마다 매번 옳은 선택을 하기란 힘든 일이다.  나는 매 순간 인간으로서의 나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신의 안위와 무탈한 일상을 위해 어떤 소신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이 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깨닫는다. 아 나는 역시 나는 출퇴근이 가능한 노예였어.  하마터면 자유인인 걸로 착각할 뻔했군.  그렇게 노예는 벙어리 3 년 귀머거리 3 년 의 수련기간을 거쳐 노예 중의 상노 예인 본인이 주인인 줄 알고 주인을 대변해주는 노예로 거듭날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나 또한  내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그게 코로나든 뭐든 다른 사람한테 옮기든 말든  내 뜻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는 인간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언젠가 회식자리에서  

"근데 000들은 자식들한테 직업 말하기가 좀 그럴 거 같아 안 그래?"라고 천진하게 웃던 직장상사의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경악을.

뭔가를 포기하는 순간이 많아질 때마다,  결국 내가 포기하게 되는 것은 나의 인간성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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