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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Apr 13. 2022

비겁함이 먼전가 야비함이 먼전가.

작은 연산군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손실보상건이 발생했다. 오접수인지 오배달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고객은 직원이 잘못 접수했다고 우기고,  직원은 고객이 기표지에 주소를 잘못 기재한 것 같다고 하고, 집배원은 주소도 틀리고 전화번호도 틀려서 연락은 안 되었지만 쓰여있는 주소에 물건을 던져두고 왔다고 했다.  집배원은 배달했다고 하고  고객은  상대방이 못 받았다고 하고,  잘못된 주소의 주인은 연락할 방법이 없으며  물건은 사라졌다. 나는 솔로몬도 아니고 셜록 홈스도 아니고 당사자도 아니고 심지어 팀장도 아니니  잘잘못을 가려낼 능력도 권한도 없어서 그저 구경꾼으로 그 사건을 관망했다.   


고객은 자기의 물건이 없어졌다며 날마다 항의 방문을 해  접수 직원을 닦달했다.  

심지어  접수할 땐 분명히  상추라고 했는데,  자신이 보낸 건 사실 20만 원 상당의 굴비라고 주장했다.  굴비라고 기재된 영수증을 가져와서  증거라고 내밀었는데  정말 그게 그 상자에 들어있었는지  미각 잔치를 하려고 산 굴비 영수증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팀장은 본인이 '책임직'이며  민원이 들어왔을 때  해결해야 하는 최일선에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결국 닦달을 견디지 못한 직원이 지갑에서 이십만 원을 꺼내 고객에게 돌려주는 걸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아니 마무리가 아니다.  우리 회사의 유일한 복지 '손실보상'이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굴비 영수증을 첨부하고 문서를 내는 절차를 거치면  업무 중 실수로 인한 어느 정도의 손해는 회사에서 보상을 해준다.  구경꾼인 나는 연극의 막이 내린 후 기립박수를 보내 듯 기꺼운 마음으로 당연히 복지제도의 수혜를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추가 굴비로 변신한 이 사랑스러운 사건의 피해를 온전히 직원에게 물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 요건에 부족해 반려되더라도 당연히 시도는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좀 안일한 인간이 맞나 보다. 되고 안되고를 판정받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문제를 고려하지 못했다. 판정해줄 사람의 귀에까지 무사히 도달하느냐의 문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분명히 그 존재를 드러내는 위계의 문제 말이다.  팀장님은  과장님에게 그걸 보고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한소리 듣는 게 무섭다는 거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었다.   한 소리하면 그냥 들으면 되지 그게 무서워서 말단 직원에게 금전적 책임을 다 지우는 게 말이 되나? 그저 말 듣는 게 무서워서?  너무 비겁한 거 아닌가 싶어서 화가 났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비겁함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별거 아닌 걸로 사람을 쥐 잡듯이 잡으면 그럴 수 있는 거다. 별것도 아닌 걸로 과하게 화를 내고 심한 발언을 일삼는다면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말도 못 꺼내는 상태가 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 있게 해야 할 말을 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타인을 보호하려는 시도에서 그 사람의 인격이 빛을 발하는 거겠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이렇게 작은 집단에서 아주 작은 권력을 가진 것만으로도 그토록 타인을 마음을 짓이겨 간장종지만 하게 만들어 놓을 수 있다면 ,  이런 크고 작은 위계들로 촘촘히 엮인 세상에서 한없이 작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존엄을 지키고 마음의 크기를 보존할 수 있겠나. 안 그래도 작은 나 자신이 갑자기 더 작아져서 짜그라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짜그라진 세상에서 짜부라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 세상의 어떤 권력도 나보다 인격적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   나를 인격적으로 짓누를 수 있는 힘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 작디작은 연산군들에게 우리가 맞설 수 있는 방법은 '너는 나보다 직급이 높은 직장동료일 뿐이다.'라는 주문이다.  어차피 양로원에서 만나면 언니 오빠 동생일 뿐. 먼저 가면 애도해 줄 수는 있지만 대신 죽어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뭐 그렇게 기분을 걱정하고 반응까지 예측해서 미리 입맛에 맞게 굴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연산군 님들은 다 안다.  누가 자신을 두려워하는지.  그 두려움을 즐기게 하지 말자.


 우리의 스몰 베리베리 스몰 연산군도 가만히 보면 유난히 더 가혹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고, 또 좀 더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 가만히 보면  자기 할 말 하고 본인을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다정하고,  두려워하고  좀 온순한 사람에게 가혹하다.  야비하지만 뭘 어쩌겠나.  그저 사냥감이 되지 않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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