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객관식이면 좋겠네.
혹은 네 아니요로만 대답해도 될까?
다음 달이면 아이의 세 번째 생일이다. 현행 나이로는 4살이고 아직 36개월이 안되었지만 제법 대화가 통한다. 아이는 점점 못하는 말이 없고 나는 말문이 막히곤 한다. 어쩔 땐 얘가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엄마 아빠가 천재가 아닌데 그럴 리가 있나. 미운 4살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건 나의 무능이지 아이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와 경찰 놀이를 했다. 아빠는 도둑이고 나와 아이는 경찰이다. 아빠 도둑이 자꾸 아이를 번쩍 들어 멀리 내려놓으면 아이는 "거기 서어!!!" 하면서 도망치는 아빠를 쫓아 달리는 걸 반복하는 그냥 계속 달리기 놀이의 변형된 버전이다.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아이에게
"납치한 아이가 어떻게 여기까지 혼자 달려왔지?"라고 말했더니
"엄마, 납치한 아이가 아니라 납치된 아이지"라는 거다.
이 작은 머릿속에 들어있는 수동태를 발견하면,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시작하게 된다.
인간이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기 시작하는가.
호모 놀고먹고자기만해쿠스가 호모 로퀜스가 되는 과정의 신비에 대하여.
호모사피엔스가 슬기로운 인간이라면 사피엔스여서 로퀜스가 되는 건가 로퀜스여서 사피엔스가 되는 건가 하는 인문학적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정원에 놀러 가서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를 보고
"엄마랑 하늘 기차표 사러 갈까?" 이랬더니
"엄마 표는 사는 게 아니라 끊는 거야"라고 했다.
그러니까 '슬기로운 인간'이 '지적하는 인간'이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라던가. 혹은 맨스 플레인이 시작되는 나이가 바야흐로 만 2세라면 왜 어떤 이들은 이 맨스 플레인이 견고해지고 당당해지는 반면 어떤 이들은 억제되는 것인지. 이건 사회적 압박이나 문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건지. 이런 고민도 할 수 있다.
내가 인문학을 하든 철학을 하든 멍멍 소리를 내든 간에 아이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더 많은 것을 보고 , 더 많은 것을 배우며 더 많이 생각한다. 알고 싶은 게 많아지는 만큼 질문도 많아진다.
언젠가 사과를 골똘히 보던 아이가
"엄마 사과는 다른 말로 애플이야. "라는 거다.
"그건 어디서 들었어? 맞아 사과는 애플이야."
"다른 말은 뭐라고 하는 거야? 왜 사과가 애플이야?"
"..... 다른 말이 뭐냐고?? 아 영어라고 하는 거야. 애플은 영어야. 영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인데. 너가 쓰는 말은 한국어고.. 아니 다른 말은 나라마다 다른데 어떤 나라는 영어를 쓰고 어떤 나라는 뭐 중국어나 일본어나 스페인어나 아랍어.."라고 횡설수설하고야 말았다.
그 뒤로는 자꾸
"쉬는 영어로 뭐야?. 응가는 영어로 뭐야? 그럼 로보카폴리는 영어로 뭐야? 근데 엄마, 밖에 호박에 불 켜져 있는 건 영어로 뭐야? (연등이었다. 그건 영어로 대체 뭘까..) " 라며 나를 고문한다.
그런 질문을 들으면 일단 나의 짧은 영어단어 실력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애초에 외국어 교육은 모국어를 완벽히 한 후에나 생각해봐야 한다는 나의 교육관에도 타격이 온다.
지금이 아이의 영혼이 집터를 닦는 시기라면 그건 철저히 모국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 겪는 모든 감정의 풍파가 모국어로 만든 단단한 집에 숨을 수 있도록. 외국어는 후에 필요에 따라 그 집을 꾸미는 인테리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오는 이런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보면, 언어적 시냅스가 엄청나게 생성되는 이 시기에 그냥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게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주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나나 남편이 그 호기심을 충족할만한 언어적 능력이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긴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혹시나 배울까 봐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뜻을 내포한 언어를 자제하게 되더니 이제는 문장 구성이나 문법구조까지 신경을 쓰게 되고, 모르는 영단어들을 질문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에겐 거의 언어 암흑기가 되어가고 있다.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세상이 넓어질수록 나는 점점 불안해진다. 생각지도 못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그건 또 다른 고민으로 연결된다.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것들 투성이다. 마이쭈는 하루에 하나만 줘야 하는지 여러 개를 먹여도 상관없는지부터 스스로 하는 것과 도와주는 것의 경계는 어디인지 훈육과 억압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까지.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어떤 확신과 신념으로 그 경이로운 확장에 참여하는 걸까.
때로는 내가 엉망일까 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