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거절에는 용기가 필요해.

너 말고 나말이야.

by 기묘염

아이와 놀이터에 갔다. 집에 있는 장난감 청소기를 들고 가겠다고 우겨서 하는 수 없이 들고 갔다. 공공장소를 청소해보겠다는 생에 첫 선의를 차마 막을 수가 없었다. 지구에 서른세 달을 살면서 먹어치운 작은 생명들을 생각하면 환경교육을 하기에 그리 이른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는 환경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냥 질질 끌고 다니다가 내팽개치고 그네에 매달렸다.

내팽개쳐진 청소기에는 우리 아이보다 더 작은 아이가 매달렸다. 그 광경을 보고 갑자기 청소기에 대한 강한 애정을 깨닫게 된 우리 아이가 황급히 달려가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작은 아이는 청소기를 갖고 놀겠다고 떼를 쓰며 울었다. 나는 그 아이가 옆에서 우는 게 불편해서 동생 한 번만 하게 해달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안돼! 내 거야!"

"그래 너 꺼야. 너껀데 아기가 하고 싶어 하니까 한 번만 가지고 놀게 해주자"

"싫어! 이거 내 거란 말이야!"

아이는 거부하며 청소기를 들고 등을 돌렸다.

작은 아이는 우리 아이를 따라다니며 울고 작은아이의 엄마는 자기의 아이를 쫒았다니며

"오빠한테 한 번만 가지고 놀게 해달라고 부탁해봐"라고 계속 이야기했다.

작은 아이는 엄마 말대로 "오빠 한 번만 가지고 놀게"라며 쫓아다녔다.

아이는 네 번 정도 "싫어!"를 반복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는 계속 싫다고 하고 다른 아이는 계속 울고 다른 아이의 엄마는 계속 부탁해보라고 자기 아이에게 말하며 내 아이에게 압박을 줬다. 결국 아이는 나와 그 아이와 그 아이엄마의 눈치를 보다가 울상을 지으며 청소기를 건네줬다.


그 아이가 가지고 노는 내내 우리아이는 초조하게 그 아이를 지켜봤다. 심지어 작은 아이는 청소기로 놀이터 바닥뿐 아니라 흙이 뭉쳐진 화단의 흙을 문지르며 뛰어다녔다. 그 광경을 보는 내 아이는 점점 울상이 되었지만 그 아이의 부모는 조금도 말리지 않았다. 나도 어린아이에게 뭐라고 할 수 없어서 보고만 있었다. 쩔쩔매는 우리 아이를 보는데 속이 상했다. 그냥 갈걸. 왜 나는 굳이 아이한테 권유를 빙자한 강요를 한 걸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건 분명히 자기 물건이고 낯선 아이에게 빌려주는 게 싫을 수 있다. 아이는 정당하게 거절했는데 어른들이 자꾸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게 옳은 일일까? 그건 부탁이나 권유가 아니라 강요였다. 사람은 거절을 할 줄도 알아야 하고, 그 작은 아이의 입장에서도 여러 번 부탁해도 거절당할 수 있다는 걸 배울 기회는 아니었을까? 거절을 하는 것에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 나는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적절한 순간 내 아이를 보호하는 일을 외면한 건 아닐까?


육아는 어렵다. 특히 아이들끼리 일어나는 작은 분쟁에 참관인이 되었을 때 내가 취해야 할 태도를 정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내 아이가 다른 아이의 물건을 만지고 싶어 할 때, 상대방 아이가 싫다고 하면 바로 아이를 설득하고 훈계한다. 저건 저 형아 꺼야. 형아가 싫다잖아. 다른 거 하고 놀자. 이렇게 말하고 단념시키는 편이다. 반면 그 아이의 엄마는 계속 따라다니면서 '오빠에게 다시 부탁해봐'라고 네 번을 이야기했다. 뭐가 옳은 건지 나는 모른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가르치는 것이 옳은지, 상대방의 거절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옳은지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이도 저도 못하고 쩔쩔맨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가 신념을 가지고 아이를 가르쳤더라면, 상대방의 거절을 받아들이는 법을 교육시킴과 동시에 나 또한 내 의사에 반하는 일은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가르쳐야 했다. 나는 거절을 받아들이는 교육을 시킨다면서 정작 내 아이의 거절 의사를 존중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가서 울분을 터트리며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사실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건데 그 부모의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그걸 들은 엄마는 나를 정말 이상하게 쳐다보며 "아 그럴 수도 있지. 애기가 좀 갖고 놀면 줄 수도 있는 거고 뺏길 수도 있는 건데 뭘 그런 걸 가지고 예민하게 그러냐"라고 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그렇게 자랐었나? 그렇게 관대한 어른들 아래에서 자란 우리가 어디 가면 거절도 못하고 정당한 내 권리를 찾는 일에 실은 취약하다는 것을 엄마는 알까?


어떤 사람들은 부탁을 명령처럼 한다. 부탁이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타인의 거절이 무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반대편에는 거절을 못하고, 정당한 거절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양극단에서 내 아이를 구제하고 싶다. 부탁을 어려워할 줄 아는 사람. 상대가 부탁을 들어주면 고마움을 느끼고, 상대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때는 수긍하고 오히려 미안해할 줄 아는 사람. 내가 싫은 것은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고, 거기에 어떤 부채감도 느끼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키워내고 싶다.


매번 아이가 겪고 배우는 모든 경험으로부터 나도 함께 배운다. 나는 매일 후회하고 매일 반성하고 매일 새로 다짐한다. 이건 왜 이랬을까. 앞으론 이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반복학습은 결국 승리한다. 그 순간에는 너무 속상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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