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에라 이 먼지 같은 인간아.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쉬는 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둔 채로 나 혼자 연가를 썼다. 며칠 전부터 설렜는데 막상 그날이 되니 뭘 먼저 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댔다. 이것저것 평소에 미루던 모든 일을 다 해볼 생각이었는데 하루가 생각보다 짧았다. 시간의 상대성이론이란 우주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노동과의 관계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의 암흑물질만큼이나 놀라운 그 노동의 시간 말이다. 시간을 변형시키고 왜곡시키고 한없이 어둡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닮아있는 바로 그 노동의 시간 말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은 놀기 위해 태어났다. 아이의 하루를 살펴보면 격렬한 놀이와 덜 격렬한 놀이, 좀 더 흥분되는 놀이와. 조금 시들한 놀이로 짜임새 있게 굴러간다. 인간은 하루 종일 놀 수 있고, 놀기 위해 태어났고 놀이가 곧 인생이다. 어떤 놀이에서 흥미를 느끼느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인간을 매일같이 장시간의 노동에 노출시키는 것은 곧 우주 방사능에 노출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방사능으로 가득 찬 나의 우주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연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돈을 위해 일하는 인간. 진정한 놀이가 무엇인지 잊은 지 오래다. 돈의 노예답게 돈을 쓰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로 결심했다. 머리 염색을 하려고 했으나 그건 너무 정적이다. 차라리 운동을 하는 편이 몸에도 좋고 정신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쇼핑을 가기로 했다. 쇼핑몰을 배회하는 일이야 말로 자본주의형 인간에게 가장 적절한 운동이다. 걷다 보면 유산소 운동도 되고, 뭐라도 하나 사서 들고 걸으면 근력운동도 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가족단위로 화기애애하게 밥을 먹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여기서 나보다 행복한 새끼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백화점을 배회해 보았으나 생각보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지 않았다. 결국, 아이코너로 가서 아이 옷을 구매했다. 아이를 두고 혼자 나오면 뭐하나. 이미 나는 일방적인 사랑에 빠진 가여운 인간인 것을. 아이 옷은 얼마 못 입기도 하고 충동적으로 자주 사게 돼서 굳이 비싼 옷은 사지 않는데, “오늘은 뭐라도 하나 사야겠다!”라는 들뜬 기분과. “고객님 이건 너무 잘 나가서 마지막 하나 남은 옷이에요” 의 콜라보로 마음이 흔들렸다.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라서 내려놓으려고 했으나 , 옆에 온 다른 엄마가 가격도 묻지 않고(심지어 내가 고른 것보다 훨씬 비싼 옷이었다) 바로 계산해서 사주는 것을 보고 한껏 자극을 받아버린 탓에 결국은 사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 너무 비싼데, 나 이거 괜히 산거 아닐까. 아 가서 환불할까. 어차피 애들 옷은 길어야 이년인데. 어우 내 옷들보다 더 비싸잖아. 겨울옷도 아니고. 아 봄은 정말 짧은데. 이 가격에 트렌치가 웬 말이람. 하는 후회를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즐거운 하루는 그렇게 끝장났다. 나는 혼자만의 휴식이 필요하다 여겼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기분전환이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아이가 뭘 아나. 아이는 비싼 옷을 입든 내복을 입고 돌아다니든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아이는 세뱃돈으로 받은 오만 원짜리를 마이쭈 하나와도 바꿀 수 있는 담대함을 가졌다. 나는 아이를 빌미로 어떤 감정을 보상받고 싶은 걸까? 다른 아이의 엄마가 옷을 사주는 걸 보고 ' 그래 우리 애도 이 정도 옷은 사줄 수 있지'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말이다. 내 안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다가 잠깐 느슨해진 틈을 타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이 한없이 가벼운 영혼의 부스러기를 어떤 식으로 관리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