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살아가려면.

by 기묘염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고백을 한다. 그 조그마한 손으로 나를 꼭 껴안으면서 최대한 다정한 말투로 내뱉는 ‘사랑해’는 언제 들어도 질리거나 싫지 않다. 그래서 매번 들을 때마다 호들갑스럽게 "우리 아기 엄마도 사랑해!!!라고 맞장구를 쳐줬더니 갈수록 고백의 강도가 진해진다. 사랑해. 알러뷰. 엄마 세상 최고 사랑해. 엄마아빠아 사랑해 우리는 가족이야. 까지 발전했다.


우리는 가족이야 라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을까 싶었는데 드디어 출처를 알게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그달에 배웠던 교재를 아이 편에 보내주는데 그 안에 ‘가족’ 챕터가 있었다. 엄마와 아빠와 아이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엄마 아빠 외에 누가 있나 다음장을 봤더니 다른 한 명의 아이와 강아지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족이란 이런 식으로 학습되는 거구나. 엄마 아빠 형제들 그리고 강아지.


그러니까 아이들의 교제에는 엄마와 아이만 있는 가족, 아빠와 아이만 있는 가족, 혹은 할머니 할아비와 아이가 있는 가족, 혹은 아이들끼리 있거나, 같은 성별의 부모를 두었거나, 다른 공동체로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보다 강아지가 먼저 들어왔다. 물론 그것도 훌륭한 발전이긴 하다. 강아지를 가족이라고 배운 아이들은 강아지를 유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어디선가 고려장을 배워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의 시스템이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는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그 분야가 아동 교육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배운 대로 생각한다. 어릴수록 쉽고 빠르고 강렬하게 흡수한다. 아이들의 눈앞에 던져진 작은 불씨는 어느 순간 폭발적인 힘으로 그 아이를 먹어치울 수도 있다. 어릴 때 만들어진 개념과 세상을 보는 눈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쪽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교육과정을 다듬는 손들이 좀 더 세심해졌으면 좋겠다. 남들과 다르거나 소수 거나 약자인 아이들이 책 속에서조차 차별받지 않도록 말이다.



‘우리는 가족이야’라는 말을 듣는 일은 퍽 감회가 새롭다. 운동회에서 청군 백군으로 나눠 이어달리기를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소속감은 나에겐 좀 막연한 감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늘 그런 게 부족했다. 다른 학교 애들이 우리 학교를 욕하면 발끈하던 친구들을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다. 우리 반과 다른 반이 경쟁하던 합창대회에서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이겨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대학이나 같은 과의 후배를 사회에서 만난다고 해서 특별히 더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났을 때 그렇게 크게 반가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감정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사실 좀 외롭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소속감이란 그저 엄마 아빠 나로 구성된 폐쇄적인 가족공동체 정도였는데, 아이가 정의 내려준 '가족'의 테두리 안에 살다 보니 점점 소속감이 확장되는 기분이다. 아이와 비슷한 나이의 어린애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된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들을 보면 잡아줘야 할 문은 없는지 자꾸 살피게 된다. 나이 든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부모로 보이더니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걸 생각하게 된다. 육아는 모든 면에서 내 생활을 제한하지만, 아이는 모든 면에서 내 생각을 확장시킨다.


아이가 자라서도 '가족'이라는 말을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다. 어릴 때의 '가족'은 아이가 아는 유일한 우주이고 세계지만 , 아이가 자라면 '가족'은 우주에서 유일하게 알고 싶지 않은 단 하나의 세계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맞닥뜨리는 세계가 가족이라면, 나는 지금보다는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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