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꾸 입안이 아프다고 해서 치과에 갔다. 어딜 가나 앉을자리부터 찾는 몸 무거운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앉아있고 싶지 않은 의자가 바로 치과의자와 산부인과 의자다. 하물며 30개월밖에 안된 아기를 치과에 데려가려니 며칠 전부터 머리가 무거웠다. 벌써 충치는 아닐 거야 하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데려갔다. 눕히는 일부터가 난관이었다. 세명의 손이 달려들어 아이를 붙들었다. 한 명은 머리를 한 명은 턱을 한 명은 양팔을 잡았다. 의사 선생님은 숨넘어가게 울고 있는 아이의 벌어진 입에 우아하게, 그야말로 우아하기만 하게 치경과 핀셋을 넣고 살폈다. 국자로 국을 푸는 숙련된 요리사 같았다. 아이는 정말로 서럽게 우느라 숨이 넘어갔다.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강제로 몸의 일부가 벌려지는 그 공포가 전신으로 느껴졌다. 나는 엄마라서 같이 파랗게 질렸지만, 그걸 매일 보는 사람들은 그저 꽥꽥거리는 백명의 아이 중의 한명일뿐이다. 나는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자식들에게 보내준다고 무거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노인들을 대할 때의 내 표정과 똑같았다. 무심하고 지겹고 피곤한 표정. 기계적인 공손한 말투와 그에 걸맞지 않은 거침없는 손길. 일이란 얼마나 사람을 무뎌지게 하는가. 나는 직장에선 상대의 감정에 무감각하게 일하는 감정 로봇이고, 밖에 나가면 감정 로봇에게 일을 보는 고객이 된다. 도대체 어딜 가도 승자라곤 없는 시스템이다.
아이의 어금니에 충치가 조금 보인다고 했다.보이긴 하는데 아주 약해서 추후에 치료를 해도 되지만 엑스레이를 한 번 찍어보자고 했다. (아픈건 충치때문이 아니라 입 구석에 상처 때문이라고 했다) 아주 약해서 나중에 치료를 해도 되는데 왜 엑스레이를 찍어야 할까 생각했지만, 내가 뭘 알겠나. 이렇게 기겁을 하며 우는 아이를 어떻게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을까 염려만 했지, 어떻게든 엑스레이만 찍으면 된다는 걸 간과했다. 아이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갔다. 여섯 개의 손이 다시 아이를 붙들고 손 한 개가 뭔가를 아이 입에 강제로 욱여넣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아주 약해서 지금 치료를 해도 되고 좀 더 관리하다 해도 될 건데 상담 간호 선생님과 얘기를 해보라고 했다 아직 어려서 많이 울 거라서 묶어놓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덜컥 겁이 나서 나중에 치료를 하는 걸 선택했는데, 유난스러운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든 일에 나름의 의견을 갖고 행동하는 편이지만, 병원에서 만큼은 모든 걸 지시대로 하는 순종적인 인간이 된다. 뭘 알아야 의견도 내고 판단도 할 수 있다. 지식은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전문직이 때로 집단 권력이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가끔 내 직장 내에서도 본인들이 전문직이라 우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초라한 자의식 과잉에 대해 생각하면 슬퍼지니까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니까 따를 수밖에. 하지만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따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의문을 품는 존재다. 인간은 모두 제 나름대로 다 잘났고 타인은 모두 조금씩 못 미더운 인간들이니까.
유난스러운 부모처럼 보이는 건 두렵지 않다. 좀 유난스러우면 또 어떤가.
다른 치과에도 한 번 물어보고 결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