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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Oct 27. 2022

뭐라도 힘이 될 수 있지

동서문학상-맥심상 

대학교 때, 용돈이 너무 부족하던 차에 학교에 붙어있던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5.18관련 소재로 스토리텔링을 하면 수상작 50만원을 준다고 했다. 그날 바로 집에 가서 생에 첫 소설을 썼다. 부끄러운줄 모르고 당당하게 제출한 소설이 당선이 되서 상금을 받았었다.  내 눈엔 상금만 보였는데, 막상 시상식에 가보니  수상작들을 책으로 만들어서 나눠줬었다.  동아시아문화어쩌고 스토리텔링 어쩌고 하는 아주 길고 재미없는 제목의 책이였다. 이런 걸 누가봐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어느 날 아시아 문화전당 도서관에 갔다가 그 책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스무 살에 쓴 내 글을 처음으로 다시 읽어 본 후, 부끄러움에 온몸을 베베꼬며 그 책을 다른 책들 속에 가로로 눕혀 아무도 못 보는 곳에 숨겨두었다.  

과거의 내가 쓴 글은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한다.  지금의 내가 쓴 글은 미래의 나에게 엿을 먹이겠지.  


그날 이후,  한 번도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평가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같은 직장에서 10년을 근무하다 보면 권태가 부끄러움을 이기는 순간이 오는 모양이다.  아이가 말을 하고, 아주 약간 여유가 생기다 보니 올해는 자꾸 뭔가를 끄적이게 된다.  누군가가 내 글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 브런치도 가입하게 되고, 얼마 전엔 동서문학상 공고를 보고 나서 처음으로 공모전에 뭔가를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무 살 때 그 첫 소설 이후 두 번째로 소설을 하나 썼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아이를 보고,  아이가 잠이 들고 남편이 야근해서 없는 날, 남편도 모르게 혼자서 짬을 내서 글을 써서 냈다. 당연히 안될 거라 생각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평가를 받는 것도 두렵고 떨어지는 걸 누가 아는 것도 두려웠다.  


오늘 동서문학상에서 전화를 받았다. 맥심상을 받았다고 했다.  뭐 그런 상도 있나 상금 대신 맥심 커피라도 주나 싶었는데 정말로 맥심 커피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주요상은 당연히 아니고 , 그저 격려차원의 상이라도  문학상에 첫 도전하는 거고 거기에서 격려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기쁨이었다.  

이게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격려차원의 상답게 격려에 탁월한 효력이 있어서, 다음번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나도 미래의 내가 엿을 먹는 두려움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성취감이 부끄러움을 이긴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끈기라고는 없는 내가 조금 더 성실해질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나 새끼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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