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계엄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우리 집 6세 아동도 이젠 살아생전 계엄을 겪은 세대가 되었다. 야호시발. 어딜 가나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들끼리 눈 맞추며 역사 증언하고 자빠진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실 모두가 입을 보태니 나는 조용히 귀나 열고 있으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귀는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기관이라 아침부터 반란수괴의 망상이 필터 없이 귀로 쏟아지는 바람에 닫혀있던 입이 홍수에 수문 열리듯 절로 벌어지며 의도하지 않은 말이 흘러넘치는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저 새끼 도핑 해야 되는 거 아니야?라던가 아니면 저 새끼가 정신병으로 감형 받으려고 쳐...(생략한다.). 같은 말들이 육두문자와 함께 쏟아졌다.
아 진짜 한강 작가님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언어만 쓰고 살고 싶다.
제발요.
나는 소속감이 발달한 사람이 아니다. 속해있다는 감각이 나에게 위안과 자부심이 되었던 기억이 없다. 운동회를 할 때도 내가 청팀인지 백팀인지 관심이 없었고, 이 지역 프로야구팀의 승패가 오늘 저녁 반찬보다 흥미로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친구들과도 개별적인 관계를 선호하지 무리 지어 다니며 나의 그룹을 만들어 속해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애교심 애사심 애향심 같은 건 나와는 좀 떨어져 있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나는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고, 특정 정당에서 김구 선생님이 나와도 찍지 않을 걸 안다. 그게 이론적으로 잘못이고 비이성적이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건 나에겐 정치적인 문제라기보단 인간적인 도리에 가깝다. 나는 좋든 싫든 사랑하든 말든 학살의 역사를 가진 도시에서(그렇지 않은 도시가 있긴 있나) 평생을 살았고, 억울하게 죽은 평범한 사람들의 뼈가 묻혀있을지도 모르는 땅을 매일 밟고 살아간다. 아직 50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고 그날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도처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도시에서 감히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쿠데타의 유전자를 지닌 정당이고 역사를 반복하며 무려 2024년까지 제 버릇을 개에게 주지 못한다(하긴 개가 그딴 걸 준다고 받겠나). 그렇다고 또 다른 특정 정당의 지지자는 못 되는 것이 내 약한 소속감이 빛을 발하는 부분인데 바로 그 부분에 양당제의 한계와 모순이 존재한다.
정말이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 몸뚱이 하나조차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딥 페이크의 시대를 사는 인간이 어떻게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여성의 자궁이 공공재 취급되어 가임기 여성의 분포 지도가 암소 새끼 거주지 표시하듯 버젓이 국가기관의 저작권이 찍혀 배포되는 세상에서 정치에 초연한 인간이란 얼마나 볼품없는 자기 기만인가. 이번 집회에는20 30대 여성들의 참여도가 눈에 띄게 높다고 들었다. 왜 아니겠나 젊은 여성들의 몸뚱이 자체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자빠진 전쟁턴데. 정치는 생존의 영역이다. 위협을 받는 사람들일수록 더 치열하게 정치적일 수밖에.
진즉 쓸걸. 새벽 한시에 쓰기 시작하는 바람에 사회에 절여진 직장인은 내일 출근 걱정이 앞선다. 잠을 방해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는 시발 같은 내일이 또 반복된다는 확신이 주는 안도와 절망 때문이다. 존나다행인데 존나싫어.. 그러니 잠이 오겠어?!
게다가. 놀랍게도. 반란의 수괴가 아직도 우리의 대통령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