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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Oct 22. 2021

일을 그만두기까지

직장에서



사실 일상생활은 어떻게 했는지 직장은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그냥 무식하게 참았던 기억만 있다. 내가 얼마나 잘 참았냐 하면, 나중에 일을 그만둘 때 넌지시 '그때 그 업무 할 때 진짜 머리 아파 죽는 줄 알았다'라고 하자 같이 일했던 약사님이 자신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바로 옆에 앉아 대화도 여러 번 나누었는데 말이다.

 

아프면 말을 하지 왜 그리 참았을까. 상사의 눈치를 너무 봐서일까. 그 공간의 공기가 힘들어서였을까. 정말 견딜 수 없는 날카로운 통증이었는데, 1초 1초가 힘들었는데, 나는 월차를 쓰지 않고 토요일만 기다렸다. 새로 얻은 직장은 월차를 월초에 미리 언제 쓸지 정하고 한 달간 계획대로 움직였는데, 마음대로 일정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규칙이고, 계획이고, 나발이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아닌가. 살면서 그렇게 아파본 적이 없는데, 어째서 미련하게 참았단 말인가. 사람이 아무리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지만, 아무리 나한테 쉬운 공간과 자리는 아니었다지만, 아프다는 사람 병가를 못 쓰게 할 사람과 조직과 상황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결국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내 몸과 건강을 지키지 못한 건 결국 나라고 말이다.









정리하려 한다


사실 이제 와서 그 시절을 떠올리려니 영 의욕이 나지 않았다. '두통으로 인한 퇴직'은 편두통 일지를 쓰기 위해 계획했던 순간부터 심도 있게 다뤄보고 싶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질병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게 아닐진대, 나는 이 글을 쓰기까지 꽤 머뭇거렸다. 

아직도 그 시간에 일부분 매몰되어 있어서일까. 내가 잘못한 것들, 잘못된 선택이 먼저 떠오른다. 분명 그보다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좋지 않은 시절이라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그럼에도 나는 이 시기를 몇 번이고 각 잡고 제대로 바라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엉킨 실타래를 시간이 흘러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됐을 때 하나하나 찬찬히 풀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일을 그만두게 된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일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이 여러 요인들이 하필 나를 이루는 요소였기에 앞으로도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망치는 기분이 들었고, 이런 기분으로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일을 그만둔 후에는 당장은 불가능하더라도 언젠가 꼭꼭 씹어서 잘근잘근 소화시키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비로소 안전지대에 도달했다. 마음의 거리를 확보한 지금에서야 인정하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았던 부족한 내 모습을 다시 되돌아보려 한다. 그때의 상황과 내 마음, 그리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내 개인적인 사정을 떠올리니 속이 복잡하여 이것저것 말이 길어졌는데, 앞으로 힘차게 과거를 정리해 보겠다. (무슨 만화 주인공 같은 말이지만!)










고민했었다


지금이야 직장을 그만두는 게 너무나 당연한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여겨지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직장을 그만두는 데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이유는 여럿인데, 무엇보다 일을 그만둔 뒤에도 이토록 오래 힘들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해 한해 살면서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짧은 시간 급격기 두통이 심화된 만큼 나는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점차 견딜 만 해 질거라 낙관했다. 만약 내내 꽤 오래 매우 아플 거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두 말 않고 고민할 여지없이 손쉽게 직장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고, 난 일한 지 얼마 안 된 새로운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워낙 아픔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내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매일매일 두통이 있는 게 당연해서 당장 미칠 듯이 아픈 것만 나아지면, 비틀비틀 힘겹게라도 익숙하게 참아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눈에 뭐가 씌었는지, 금방 일상생활을 할 정도로 나아질 거라 당연하게 생각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를 찾자면, 막 적응을 끝마친 직장을 그만두기 아쉬웠다. 일이 재밌다거나, 수입이 많다거나, 다른 조건이 특별히 마음에 든다거나, 동료와 사이가 좋다거나 등 딱히 이 직장에 어떤 큰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단지 몇 차례에 걸친 이직을 통해 일을 구하는 것이 꽤나 번거롭다는 것을 깨닫게 된 즈음이었고, 수입이 끊기면 끊기는 대로 고민이고, 일을 하지 않아 몸은 편해도 마음이 불편한 상황을 몇 차례 겪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힘들게 적응했는데, 아무런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준비란, 바로 금전적인 준비였다. 











독립 그리고 계획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기도 한데,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내가 심리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독립을 했다'고 생각했다. (일 외에 요리도 청소도 빨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부모님 집에서 같이 살고 있더라도 말이다. 


이제껏 가족의 지원으로 (나름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왔기에 이제는 좀 혼자서도 생활력 있게 살아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도 내 생활을 잘 꾸려가고 싶었는데,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더라도 오롯이 홀로 서자는 마음이었다. 

그런 나에게 수입이 사라진다는 건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나의 일상과 독립성을 흔들리게 하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더불어 일을 그만둔다면, 1년 정도 열심히 돈을 모은 후 어느 정도 준비가 됐을 때 그만두고 싶었다. 1년 열심히 일하고, 1년은 쉬면서 그동안 다른 일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나는 쉬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다. 단지 1년은 열심히 돈을 모으고 나서 쉬고 싶었을 뿐이다. 

예기치 않게 직장을 그만두는 건 전혀 반갑지 않을뿐더러 내 계획에 차질을 빚게 했다. 나는 일을 하지 않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금전적인 준비가 필요했다. 돈을 모아야 했다. 그러나 모든 게 뜻대로 되진 않는 세상인 것이다.











속마음


지나고 보면 너무 명백한 일이 당시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지금 보면 백이면 백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으니 말이다. 

내가 계속 일하길 희망했던 건 기껏 적응한 아쉬움과(힘든 시절 다 끝났는데! 차라리 빨리 그만둘걸!) 금전적인 부분과 더불어 다시는 일하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 때문이었다. 

그래, 그때는 그랬다. 이렇게 일을 그만두면 (이렇게가 뭔지 몰랐지만) 다시 일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무언가에 좌절하고 있었고, 지고 있다는 느낌과 지금 적응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그러고 말 거라는 패배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지금 보면 뭘 그리 과대 해석하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언니가 여러 차례 질문을 바꿔가며 물었다. 다 낫고 나서 다시 일하면 되는데, 그 좋은 직업을 가지고 넌 뭘 고민하는 거냐고. 왜 일을 그만두지 않냐고.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 거다. 



너 왜 계속 일하려 하냐. 
왜 그만두지 못하냐. 
왜 일하고 싶냐.




나도 모르고 있던 내 마음은 언니의 질문을 통해 형체를 찾아갔다. 언니가 상냥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캐물었을 때야 어물어물 나온 대답. 입으로 내뱉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속마음이었다. 

나는 지금 일을 그만두면 평생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힘들어도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비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내가 뭘 두려워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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