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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Oct 22. 2021

언니의 도움

일을 그만두기까지 2 

방아쇠



집에서 내 상태를 가장 먼저 알아챈 건 언니였다. 말만 걸면 신경질 내며 소리치는 통에 모두가 어느 정도 내 눈치를 보고 있던 여느 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일상을 무너뜨릴 만한 중대한 건강 상의 문제가 있으리라고 가족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지하지 못했던 건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당사자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 손을 놓은 것과 달리(걱정과는 별개로), 언니는 나의 갑작스러운 입원 이후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는 듯했다. 


하루는 언니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제 와서 뭘 물어보나 싶고, 듣는다고 알기나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보여주는 관심이 좋아서 귀찮지만 대답을 해줬다. 내 퉁명스러운 대답을 들은 언니는 무언가 결단을 내렸는지 순식간에 행동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는 듯했고, 편두통 관련 기사를 읽어보고는 적당한 기사를 골라 프린트했다. 기사 말미에는 나에게 전해 들은 현재 내 증상과 상황을 정리하여 메모했다. 그리고 부모님을 소집했다. 말 그대로 소집이었다. 

https://www.yakup.com/news/index.html?mode=view&pmode=&cat=&cat2=&nid=215598












언니의 브리핑



언니는 부모님을 앞에 앉혀 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편두통이란 질환이 어떤 건지, 편두통 환자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렸다. 기사를 근거로 내가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실제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는지 알리고자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은 쉬이 이해받기 어려웠고, 설득을 필요로 했다. 부모님은 출산의 고통에 비교될 정도라는 부분에 특히 놀라워했고, 두통이 그렇게 심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지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엄마, 아빠를 불러 앉혀놓고 브리핑을 하는 언니를 보며 나는 알면 어떻고, 모르면 또 어떠냐 싶었다. 지속된 두통으로 자의적 외톨이가 된 나에겐 지금 상황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둔감했다. 아무도 그러라 시키지 않았고, 누구도 나를 따돌리지 않았으나 나는 고립무원 상태였다. 


뭐라도 해서 고맙긴 한데, 큰 기대는 없었다. 뒤늦은 관심에 무엇이 바뀌겠는가.




언니의 메모






언니가 정리한 글을 보고 나서는 '내 고통이 이 정도밖에 전해지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언니의 메모는 내가 견디는 현실보다 훨씬 견딜만해 보였고, 내 고통의 십분지 일도 전해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축소된 상황이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그 어떤 글을 보더라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만 아는 통증에 나는 혼자가 된 지 오래였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생각했다)


동시에 기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여전히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길 바란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아무 말하지 않아도 제발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언니의 도움



기대하지 않았던 언니의 행동과 미진하다 생각했던 전달은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 무엇이 바뀌나 싶었는데, 무엇이 바뀌더라. 

그날 처음으로 부모님은 내가 아프다는 걸, 지금 내게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했다. 


그 이후로도 언니는 큰 힘이 됐다. 언니의 노력은 눈에 보였다. 아빠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대답을 한 것도 언니였고, 엄마가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할 때 나선 것도 언니였다. 내가 도무지 내 상태를 전달할 수 없을 때 대화의 물꼬를 틀고, 물살이 되며, 행동의 방향을 정한 사람은 다름 아닌 언니였다.


편두통을 알아야 한다며 편두통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잘 설명된 책을 사 읽었고(둘 다), 미국 약사가 저술한 내가 제일 열심히 읽은 편두통 책을 사준 것도 언니였다. 

(이 책의 저자는 약사들 사이에서는 누구나 알 법한 유명한 미국 약사인데, 언니가 어떻게 알고 이 사람 책을 샀는지 처음 책을 받고 무척 놀랐었다. 어쩜 이리 검색을 잘하고, 좋은 정보를 걸러서, 이 책을 골라냈는지!)


지금은 그냥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감사. 매우 감사..)











양방향 설득



언니의 설득은 양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한쪽은 부모님, 그리고 다른 한쪽은 다름 아닌 나였다. 언니는 나보고 직장을 그만두라 설득했다. 뒤늦게 그러나 가족 중에선 가장 먼저 언니가 그러했다. (나중엔 부모님도 가세했다)


언니는 나를 설득하면서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지금 네가 먹여 살릴 가족이 있냐, 
빚이 있냐,
집에 돈이 필요하냐, 
생활비를 내라 하냐. 

도대체 뭐가 문제냐?






정말 그랬다. 나 혼자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버거운 짐을  짊어지고, 독립이라는 미명 하에 소녀 가장의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난 마음만 소녀 가장이었다. 생활비도 내지 않았고, 학생 때와 같이 그냥 부모님 집에 같이 살고 있었다. 뭐 때문에 독립에 집착했나 싶은데, 한 사람 몫을 다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던 것 같다.


언니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적어도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 내가 직장을 그만두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걸 인지했다. 나는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됐다. (그게 그렇게 힘들어서야...)











상반된 두 마음



나는 상반된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두통이 나으리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여겼다. 통증에 압도되어 평생 이 정도의 통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고, 이 상태로 계속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원을 고려하는 순간 사람의 이성은 맛이 가버리는 것 같다)


가족들은 모두 말했다. 




그만두고, 다 나은 다음에 다시 일하면 되잖아. 





그러나 잘못된 믿음과 별개로, 나는 은연중에 그 누구보다 내 상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곧바로 다시 직장을 구할 수 있을 만큼 쉽게 그리고 빨리 상태가 좋아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선뜻 직장을 그만두겠다 말할 수 없었다.


어차피 두통이 계속될 거라면, 일을 하고 싶다 생각했다. 이러나 저라나 아프다면... 일하는 게 낫지 않나? 돈이라도 버는 게 낫지 않나? 생각은 이렇게 아픈 내가 다시 일할 수 있을지, '여기가 마지막 직장이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나는 말했다.




못 나을 거 같아. 
그래서 일을 못 그만두겠어.

 다시 일할 자신이 없어.




몹쓸 논리였다. 언니는 강하게 반박했다. 




그럼 더 그만둬야지. 

나아야지. 
더 나아지는데, 낫는데 집중해야지.






그랬다. 정말 두통이 계속될 거 같다면, 더더욱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나을 것 같지 않다면, 완전히 낫지 못한다 하더라도 완화되는 쪽으로 노력해야 했다. 그게 맞았다. 


일하면서 남은 시간에 나름 건강을 챙기는 것과 하루 종일 요양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몸을 회복하는데 더 도움이 되겠는가. 정말 낫고 싶다면, 일을 그만두고 치료에 힘쓰는 게 옳았다. 낫는데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픈데 일이나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왜 이상하다 생각하지 못했을까? 통증이 심각한데도 일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못 하다니.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뭔가에 집착하고 있었다. 일에 투영한 무언가를 좀처럼 놓지 못했다.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언니, 
내가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언니가 말했다.


'왜 다시 일 못해? 네 직업의 장점이 뭐야. 약사 면허증이 있고, 일할 곳 많고, 취직이 쉽다는 거잖아. 그게 제일 장점이잖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다시 일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 도망치는 기분. 이유 모를 패배감. 돈.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바라보자, 환경적인 면에서 나는 다시 일을 구하기 최적화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약사라는 직업의 최대 장점으로 구인구직이 쉽다는 걸 꼽는다) 


나를 괴롭히는 통증이 사라진다면, 적어도 환경적인 문제로 내가 일을 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언니 말대로였다. 또 만약 나에게 개인적이고 심정적인 어떤 문제가 있어 일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시간을 두고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무엇을 고민한 걸까? 나를 막는 것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두려움은 언니의 합리적 반박에 의해 점점 희석되었다. 두려움에 가려져있던 이성 한 자락이 다시 제 모습을 드러내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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