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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Oct 22. 2021

가족의 의미 上

일을 그만두기까지 3

경주마처럼



당시 집안은 매일매일이 눈물바람이었는데, 다름 아닌 내가 말만 하면 울었기 때문이다. 뭐 무슨 특별한 말이 오간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내가 내몰려있지 않았나 싶다. 수도꼭지가 집에 하나 있으니, 집 안 분위기가 살얼음판이었나 싶은데 또 그랬던 것 같진 않다. 신기한 일이다.


밥 먹다가 울고, 아프다고 울고, 이야기하다 울고. 그냥 어떤 자극만 있으면 울었던 것 같다. 거의 1일 1 울음으로 눈물 마를 날이 없었는데, 사실 왜 울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지금 나에겐 어떤 문제가 있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 밖에는. 그러나 여러 문제가 얽힌 엉킨 실타래의 정체를 나 혼자서는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 


살면서 몇 차례 경험을 통해 알게 됐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결정적인 순간 시야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하나에 꽂히면 그 하나밖에 보지 못하는 거다. 

양 시야를 가리고 뛰는 경주마는 갑자기 튀어나온 장애물에 어떻게 반응할까? 나는 내 앞을 드리운 장애물에 왜 항상 무너지고 마는가.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경직된 사고방식 때문일까. 혹 목표를 위해서만 동력을 발휘하는 올곧은 추진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목표를 위해 힘껏 달리는 일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안성맞춤이었겠지만, 동시에 한편으론 융통성 없고 주변을 보지 않는 고지식한 나의 성향을 강화시키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체 안일한 건지 둔감한 건지. 겁이 많은 것에 비해 위협을 잘 느끼지 못하는 걸 보면, 세상이 나를 해하지 않으리라 터무니없이 낙관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평소엔 그냥  한 눈 안 팔고, 집중을 잘하면 좋지. 하나를 열심히 하면 좋은 거다 생각하지만, 때때로 중대한 고비가 닥칠 때면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차례차례 방해물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언제나 외부의 자극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도움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선회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마는 것이다.











아픔의 이유




가족들은 점차 내 상태를 알아가고 있었다. 집에서 보란 듯이 그리 울어 젖히는데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고작 두통으로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것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당사자인 나도 그랬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는 왜 그렇게 머리가 아파. 

네가 왜 아픈데? 





부모님은 내가 하필 왜 아프냐고 물었다. 한탄에 가까운 말이었다. 아픈 사람 여럿 중 왜 하필 '내'가 아픈 것인지, 혹 내가 왜 아픈지 정말 '이유'가 궁금한 건지 어느 쪽을 묻는 건지 모호한 말이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멀쩡했던 딸의 병치레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속상함에 나온 말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아픈 이유가 뭐냐는 말은. 



그러게. 왜 하필 내가 아팠던 것일까? 이유가 있다면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알고 싶었다. 











마음의 거리



지금 와서 보면 운다는 게 그리 나쁜 신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내내 닫혀있던 입을 열고, 표현하기 시작한 거니 말이다. 단지 내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었을 뿐이고 (생각보다 더), 내가 그렇다는 걸 난 알지 못했다.


사실 그동안은 마음의 거리가 있었다. 나 홀로 그리 생각하고 가족들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적어도 나는 가족과의 사이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고 이는 물리적 거리가 아닌 심정적 거리였다. 

통증이 '아, 나 좀 쉴까 봐.' 수준이 아닌 직장을 그만두고, 일상을 뒤흔들 정도의 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나만이 아닌 가족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차가 우리 사이의 간격을 더 벌어지게 했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자주 아픈지 모르면서. 내가 이렇게 망가진 후에야 알아챘으면서. 내 시간은 고통뿐인데 내가 아프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화가 났다. 

정말 아픈 데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그 어떤 이유가 있다 한들 지금 그게 중요하진 않을 텐데 말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시작점이 다르다지만, 있는 걸 왜 있냐 물으면 나는 어떡하란 말인가.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니 답답했다. 있는 걸 없다고 말할 순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인정과 받아들이는 건 각자의 몫이었다.











아빠와 나



이상하게 나는 밥을 먹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아마 가족 간에 모여 앉아 대화하는 환경이 자연스레 조성되는 때가 밥때여서 그런 것 같다. 당시엔 엄마가 저녁에 일을 해서, 언니랑 둘이 먹거나 아빠랑 둘이 먹거나 아니면 셋이 같이 저녁을 먹곤 했다. 


내가 처음 밥상머리에서 울었을 때 아빠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난 내가 왜 울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뭐 별 이유 없이 울었을 것이다. 그때 난 항상 울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우울증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빠는 평소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편인데, 그날도 어김없이 그 성향이 발휘되었다. 식탁을 오가던 젓가락이 눈에 띄게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잠시간 나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맞닿았던 건 딱 그때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순 정지했던 아빠는 느리게 제자리를 찾더니 다시금 젓가락을 재게 움직였다. 

아빠는 얘가 갑자기 왜 우는지 도대체 그 이유를 몰랐을 거다. 그때 나는 차려진 밥을 앞에 두고, 한 숟가락도 뜨지 않은 채 울면서 아빠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를 향한 관심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아빠는 하도 내가 우는 것에 익숙해져서 내가 울기 시작해도 그러려니 하며 일상적으로 밥을 먹곤 했다. (옆에서 언니도 같이 그랬다) 야무지게 반찬도 이것저것 골고루 챙겨 먹고 밥도 꼭꼭 씹어먹었다.

나는 울면서 이것저것 내 얘기를 했는데, 입이 한 번 뚫리고, 가족들이 내가 아픈 걸 알고 있다 생각하니 그동안의 힘듦, 억울함, 고통, 직장에 대한 생각 등등을 다 뿜어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아빠가 밥을 참 맛있게 먹네' 생각했다. 먹는 와중에도 아빠는 두서없는 내 말에 때때로 질문도 던지면서 성심껏 대답했다.


언제나 아빠는 밥 먹는 걸 중단하지 않으면서 내 말을 들었다. 보통 누가 울면 당장 하는 걸 멈추고, 왜 우는지 물어오지 않나? 남이라도 그럴 거 같은데, 딸이 울면 더 달래주고 위로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집은 그런 집이 아니다. 

처음엔 내가 말을 하는데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지 않는 아빠를 보며 섭섭함을 느꼈다. (맨날 먹는 밥에 우선순위가 밀린 것 같고) 그러나 그때에도 나는 아빠가 내 얘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흔치 않게 나에게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아빠를 보며, '아, 그래도 나를 생각하고 있구나.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아빠의 시선은 음식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먹는 속도는 평소보다 현저히 느리기만 했다. (나중엔 먹는 속도도 평소와 같아지더라)


반복되는 상황을 통해 '아빠는 내가 우니까 당황스러운가 보다. 당황스러운데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나 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나한테 관심이 없고, 내가 걱정이 안 되고, 무심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닐 것이다. 

내가 사람을 대할 때, 어떤 특정 순간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는 것처럼 아빠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생각되었다.


나중엔 나는 울고, 아빠는 여전히 밥을 먹으면서 그러나 나를 향해 귀만 쫑긋하고 있는 아빠를 보며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사실 나도 눈이 안 마주치는 게 편했다. 그 아빠에 그 딸이라 생각했다.











고민 상담



한창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할 때 난 친구 두 명에게 내 고민을 토로했다.


내 고민을 들은 친구의 생각도 언니와 같았다. 친구는 당장 그만두라고, 그 공간에 있어서 내가 아픈 거라고 했다. 새로 직장을 구한 이후부터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에 친구는 장소를 바꾸는 것만으로 많이 나아질 거라 말했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그러나 꽤나 강경한 친구의 반응에 움찔 놀랐던 나는 '이럴 거까지야...' 하며 스리슬쩍 한 발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내 의사를 매우 존중했다. 내가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자, 적응도 다 했고 아프지만 계속 일해도 괜찮지 않겠냐고 했다. 솔직히 나는 이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내 말을 토대로 답을 줬으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테다. 그러나 이쪽으로 강행하기엔 난 너무 아팠고, 흔들렸으며, 혹 잘못된 선택일까 봐 겁이 났다.  


두 친구에게 상반된 답변을 들었던 기억이 지금 그때의 상황을 다시 더듬어 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언니의 설득과 친구의 말. 그렇게 '드디어 마침내 직장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끝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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