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은 사랑의 증명일까요?
글쓰기의 꿈 19
원망할 수 없다
글쓰기를 멀리하게 된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통증에 압도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강제된 휴식이 안타까운 마음과는 별개로, 몇 년간 알게 모르게 많이 지쳤던 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이놈의 글 때문에 이렇게 내가 아픈 건가 하는 마음에 원망스럽기도 했다.
두통이 심화된 데 글쓰기가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리라고 단언할 수 없었다. 내 생활에 문제가 있긴 했을 테고, 내 생활의 중심은 글이었으니 어찌 아무 영향 없다 할 수 있을까. 글 외에도 집히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지만, 그 이유로도 그리고 글 때문이라고도 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어느 누가 시키지 않은 일에 오로지 내 자의로 달려왔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아픈 사람이 되었다.
지치지도 않고
이 와중에도 나는 지치지도 않고 글을 쓰고자 했다. 첫 시작은 일을 그만둔 한 달인가 후였을 것이다. 늘 있는 통증은 언제나 견디기 힘들지만 그래도 조금은 견딜 만해지는 순간이 있었고, 미련하게도 나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도피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 할 일을 하다 보면 점차 나아질 거라는 그런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아프고 나서 처음 쓴 글은 얼마 전까지 붙잡고 있던 완결을 목전에 둔 소설이 아니었다. 소설 쓸 정신은 없었으니, 그나마 길게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쓴 글이 바로 나에게 닥친 상황, 그러니까 편두통에 대한 글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내가 겪은 바를 알리고픈 마음이었는데, 두통으로 인해 실제 벌어진 일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말하고 싶었다.
나처럼 아픈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나만큼 아픈 사람은 없길 바라면서.
다른 사람이라도 이렇게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내 코가 석자면서 도움까지 되고 싶었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꼭 당장 쓸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기록
그때그때 단편적으로라도 기록을 남기려 했다. 머리가 아팠지만 생생한 글을 남기고 싶었고,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짧은 글이 있고 띄엄띄엄 적어둔 여러 개의 메모가 있다. 처음의 기록에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지금의 편두통 일지가 되었지만, 희미해진 그때 기억들이 기록으로 남아있었던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 선견지명에 감탄을 보내는 동시에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됐을 텐데 싶은 마음도 있다. 그렇게 아프면서도 나는 주제만 달라졌을 뿐, 관성처럼 글에 대한 뜻을 쉽게 꺾지 못했다.
징하구나 싶고, 그래도 그때 그나마 덜 아팠으니 가능했겠지 싶으면서도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미칠 듯한 통증이었음을 다시 떠올린다. 아무리 사람이 살던 대로 산다지만 참 미련하지 않은가. (이젠 더는 그러지 않으리)
그럼에도 쉬이 놓지 못하다
소설은커녕 글이라기에도 민망한 날 것의 감정을 경험이란 이름으로 끄적거리면서, 다시금 펜을 잡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이어 결국에는 펜을 꺾을 수밖에 없었으니 바야흐로 내 인생 최악의 암흑기가 찾아온 것이다.
살면서 이토록 아플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신체적 통증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앞으로도 이보다 더 아플 일은 없지 않을까 싶은데, 정말 누워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글은 전혀 쓸 수 없었고, 사실 글이 문제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상태가 좀 나아졌나 싶을 때만 조금씩 쓰던 글이었다) 나는 이렇게 또 원치 않게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좀 쉬고, 나아지면 다시 쓰면 된다'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이미 하나씩 하나씩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에 지금 한 순간이 절망적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앗아가다 보니 더는 나에게 남은 것이 없어 보였다. 되찾을 날은 기약 없고, 내가 나아지기란 영영 불가능해 보였다.
나를 이루는 중심이 뿌리째 흔들렸다. 내 인생의 궤도가 방향을 잃은 것을 넘어 완전히 멈춰버린 듯했다.
그리하여 끝끝내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 이번에도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이제는 정말 포기할 때인 것 같아서. 그러나 내가 정말 아프지 않기 위해서라도 옳은 방향이었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를 포기했다.
놓는 순간
밀리고 밀린 벼랑 끝에서 '포기하면 돼'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낸 순간 눈물이 났다. 몇 년간 공들였음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내가 끝끝내 놓지 못했던 일을 타의적으로 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이런 식으로 그만둘 거라 생각한 적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쩔 도리 없는 일이이지만,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포기한 것 또한 처음이었다. 포기를 이렇게 '오늘부터 끝'이라고 무 자르듯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땅땅 끝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영원하리라 여겼던 내 사랑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끝을 맺었다. 후회할 겨를은 없었다.
두통으로 나는,
일상을 포기했고,
직장을 포기했고,
글을 포기했다.
나는 외출을 할 수 없었고,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다. 일도 그만뒀으며, 마지막까지 움켜잡고 있던 글마저 놓았다.
여기서 내가 무엇을 더 포기해야 하는가?
그런데도 나는 왜 아직 아픈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