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못하면 선택당한다

글쓰기의 꿈 17

by 김약

사람은 변한다



(심지어) 그 '결과' 마저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후회를 입에 담기란 더더욱 섣부른 일이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과'에 대한 해석이 바뀌기도 한다. '미래의 나'에게 옳은 대답이 '과거의 나'와 '현실의 나'에게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나조차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작은 변화를 거듭했고, 과거에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그런 작은 변화를 축적해 나갈 것이다. 생각이 변하고 가치가 변하고 선택이 바뀔 것이다.


당시엔 최선이었던 행동이 시간이 지나 더는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내 선택으로 인한 '결과'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해석이 바뀔 수 있다.
사람은 변한다. 만약 절대불변의 올바른 선택들의 연속이라면, 이는 내가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정체됐음을 대변하는 것일 테다. '나'가 그대로라면, 내 해석 또한 그대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되고 싶었지



어렸을 땐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할머니의 사전적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할머니란 부모의 어머니를 뜻하며, 노년의 여성을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최고의 선택을 하길 바랐다. (아무것도 안 한다면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만)

어릴 적 뭐가 되고 싶냐는 친구의 말에 막연히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내가 왜 그리 말하는지, 정말 무엇을 원하기에 할머니라고 대답했는지 알지 못했다.


사람은 나이가 듬에 따라 자신을 견고히 유지하는 동시에 완고해지는 것 같다. 할머니들에게서 나는 각자 다른, 그러나 공통된 어떤 편안함을 느꼈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는 할머니가 되고 싶었던 건 변화할 필요도, 어떤 의무도 짊어지지 않는 나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를 포기하고 한자리에 머무는데 그치기에 얻을 수 있는 안정감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유연성을 잃고, 부동의 편안한 상태에 머무른다. 내가 구한 절대적인 안정감은 나이가 들면 저절로 따라올 것이었다.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말이다.










완전무결한 세상


변화를 거부하면 완전무결한 세상에 머무를 수 있다. 이상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유지되는 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시각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내 생각과 가치와 선택은 낡아가는 옛 유적처럼 제자리를 지키며, '결과'에 대한 해석 또한 그 일부로 존재할 것이다.

새로운 해석은 없다. 잘한 선택은 잘한 선택으로, 잘못한 선택은 잘못한 선택으로 언제까지나 그대로일 것이다. 이미 결론지어진 이분법적 세상에서 반전은 일어나지 않으며, 변함없이 앞으로도 잘한 일은 잘한 일, 못한 일은 못한 일로 오직 그렇게 남는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불확실성도 없이 확정된 사실과 변치 않는 가치 안에서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안정이라면, 조금의 혼란스러움을 안고 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내린 최선의 선택이 훗날 부정적인 방향으로 재평가될 때마다 '이랬으면 좋았을걸' 하며 후회해야 할까? 어떤 행동도 어떤 선택도 한 사람을 완벽히 만족시킬 수 없는데, 후회를 곱씹어야 하나. (단순히 한 시점의 판단으로 벌써부터 후회를 입에 담기엔 이르지 않나)
어떤 일도 후회할 수 있다는 건 곧 어떤 일도 나중에 어떻게 해석될지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과는 변하지 않지만, 결과의 해석은 변한다.

사람이 하나만 보며 계속 달릴 수는 없을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이 마음도 언제 변할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선택지가 있다면,
나는 글을 쓰며 살고 싶다.




마침내 받아들인다.












언젠가 후회할 수도 있다 해도



많은 것에 무심한 내가 그토록 오래 붙잡고 있었다. 어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정을 가지고 임했다.


좀 마음대로 살면 어때. 다른 누가 반대를 하고 걱정을 표하더라도, 나를 잘 아는 나만은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지 않나. (네가 해본 걱정, 이미 내가 다 했다)

심지어 어느 누구도 나를 저지하지 않는데, 어째서 나는 망설이고만 있는가. 마음 가는 대로 내키는 대로 한 번은 움직여도 좋을 것이다. 한 번은 해볼 만하지 않은가.


앞으로도 나는 변할 테고, 내 생각과 판단의 기준은 계속 변할 것이다. 언젠가 후회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당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걸, 어느 때보다 심사숙고하여 가능한 최선을 택했다는 것을, 언제나 노력했음을 기억한다면 후회가 단지 후회로만 남진 않을 것이다. 어느 누가 기억하지 않더라도, 나만은 잊지 않는 잊을 수 없는 선택이 되어 남을 것이다.












그 이상



가족, 건강, 친구, 직장 등 흔히 삶의 기본 조건이라 일컫는 것을 채우기란 생각보다 힘이 들며, 한 번 잃으면 치명적일 정도로 쉬이 복구하기 어렵기도 하다. 잃고 나서야 그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지만, 한번 익숙해지면 너무나 당연한 나머지 소홀히 여기기 쉽다.


그리고 이런 상실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이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팔자 좋은 고민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힘든 게 없으니 사서 고생이고, 걱정이 없으니 별 걸로 다 고민한다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이 채워지면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미래를 그리고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지 않을까. 이미 나를 이루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잊지 말아야겠지만 (익숙하더라도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 나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이상'이 정말 필요하다 생각한다.












내가 지킨 현실



삶의 낙이 없고, 목표가 없고, 열정이 없고, 재미가 없다. 세상이 온통 나를 소모시키는 일뿐일 때 그렇게 지켜온 유지하기만 하는 삶은 전혀 기대가 되지 않는다.

의미 없는 일상과 더는 기대되지 않는 내일만을 앞두고 있다면, 어느새 우울이 찾아와 내 곁에 머무를 것이다. 나아질 일 없는, 나빠질 일만 남은 미래를 앞에 두고 우울감을 떨쳐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상 가능한 안온한 현실에 불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슴 뛰는 일도 없다. 계획을 빽빽이 세운 여행에서 계획 그 이상의 감상을 얻기 힘든 것처럼, 이미 알고 있는 기쁨 외의 것을 얻으려면 예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를 채워주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

나를 기쁘게 하고 두근거리게 하는 것. 의욕을 고취시키고 생기를 불어넣는 것.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어떤 것.




​물론 단지 이만을 쫓아야 한다고 말할 순 없다. 안타깝게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삶의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한 개인의 존립에 치명적이다.
삶의 기본 조건을 챙기는 것만으로 버거워서 이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할 때도 있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무덤 속에서도 후회할 거 같다는 극단적인 감상은 아니다) 그러나 소중히 지켜온 현실이 아닌, 내가 가장 바라는 걸 버리고 지켜낸 현실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생각한다면, 글쎄 정말 그러한가 싶은 것이다.












선택하지 못하면 선택당한다



방향이 다른 두 가지 욕망으로 오랜 시간 괴로워했다. 빠른 주제 파악으로 나는 아무리 글이 좋아도 확정된 수입 없는 생활을 버텨낼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미친 듯이 글만 쓰고 싶지만, 돈이 중요했다. 그러자면 생계유지는 따로 하면서 (내 직업과는 관계없이) 글을 써야 했다.

​시간이 부족하다 했지만, 어쩌면 돈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돈이 많다면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쓸 필요 없이 글을 썼을 테니 돈이 많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 정말 시간, 돈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됐는데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나에게도 이런 선택을 할만한 충분한 돈은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간과 돈은 그리 녹록지 않은 자원이니, 대부분의 인간은 평생 이 두 가지를 정복하지 못하고 살아가지 않는가. 나 또한 그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나는 글과 돈, 둘 다 손에 놓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조건을 욕심껏 다 채우고 싶었다. 양립하고 싶었고,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고, 글로 인한 즐거움이 적당하다면 지금이 낫다.

반대로 지금이 썩 좋지 않고 글이 주는 기쁨이 더 크다면, 한 번 글로 가보는 거다.




그러나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선택을 유보했다. 한정된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몸을 굴렸고, 나중엔 선택조차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시간에 떠밀려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도 선택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하나는 얻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나는 당연히 잃겠지만) 시간에 떠밀려 한 선택도 선택이니까. 그런데 이런, 정말 예상치 못한 결과로 둘 다 놓치고 만 것이다. 정말 이럴 수도 있었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어느 쪽도 택하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둘 다 놓치는 선택에 내몰렸다. 몸이 줄기차게 보낸 신호를 무시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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