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잊히지 않을 거라 생각한 일이 잊힌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생생하게 떠올렸던 기억이 희미해지는 걸 깨달은 순간, 고통에 짓눌렸던 끔찍한 나날도 결국 잊히고 만다는 사실에 놀라고 만다.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잊기는커녕 이 통증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으리라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강렬한 기억도 사라지기 마련이고, 결코 잊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뼈에 새긴듯한 경험도 기한의 유효함이 채 5년도 되지 않는다는 걸 체감한다.
선명했던 감정이 또렷하게 상이 맺히다 이내 흐릿해진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심상은 찰나의 인상이 되어 단편적인 그림으로 남는다. 당시 기록한 몇 개의 단어, 몇 줄의 문장, 휘날려 쓴 메모를 보며 정말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이 되었다는 것, 옛일이 되었음을 비로소 실감한다.
시간 따라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어둡고 긴 통로를 벗어나 밝은 햇빛 아래 서 있다. 뒤돌아보면 그림자 진 어두운 형체의 윤곽이 어렴풋이 잡힌다. 아직 한눈에 다 들어올 만큼 충분히 멀어지진 않았지만, 끝나지 않으리라 여겼던 길고 긴 터널을 마침내 빠져나왔음을 깨닫는다.
미련
극명하게 내가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마치 짧은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글로 나를 표현하는 순간에 도취되고, 매료됐었다. 중독된 것 마냥 앞으로도 이 순간을 위해 살아갈 거라 생각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보며 궁금해하곤 했다. 당신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는지. 그리고 이런 순간을 찾은 당신은, 다른 것 따위 다 상관 없어진 당신은 지금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아직도 '내게 주어진 그 시간을 더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놈의 질척거림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아프다면, 어쩔 도리 없이 '그만해 그만해' 하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내일은 안 아팠으면 좋겠다'를 넘어 '과연 내일은 내가 안 아플 수 있을까' 생각했던 때가 있다. 아픔에 잠식된 몇 개월의 시간은 아프지 않은 나를 더는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고, 내일은 아프지 않을 거라고, 그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던 나날이었다. 약으로도 조절되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그저 온몸으로 통증을 견디는 일뿐이다.
열심히 살았다
처음엔 이 통증이 이처럼 오래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큰 시련이 닥쳤다고 일찌감치 알아채지 못했던 까닭에 나중엔 ‘당했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눈치코치 없다면 위험 감지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일을 하며 글을 쓰니 당연히 힘들 수도 있다고 나를 다독였다. 글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앞으로 더 잘 해내면 된다고 다짐하곤 했다. 20대의 나는 앞날이 눈부시게 창창하고, 나아갈 시간이 충분해서 더 좋게 변해 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말이다. 무심코 달려온 앞길이 보이지 않는 거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달려온 반증일까? 나라는 사람의 끝을 한정 짓고 싶지 않지만, 더 나아갈 데가 없는 느낌. 나의 한계를 목도한 느낌이었다. 뭔지 알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당신은 정말 알고 있을까? (나는 몰랐는데 말이다)
통증으로 인한 우울과 비관, 반복된 무기력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감정에 파묻혀서 일부 과장된 면이 있을지도 모르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는 허무에 붙잡혔던 걸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분명 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 길의 끝에서
나을 거라고 했다. 낫겠지. 잘 될 거라고 했다. (누가 말했더라) 당장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그리 믿고 싶었던 만큼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기에 지금보다 열심히 살 자신이 없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안됐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없다. 이전과 같은 방식의 결과가 지금이었으니까. 열심히 최선을 다한 결과가 지금 이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막막했고, 그래서 답답했다.
순간 '너무 열심히 하지 말걸 그랬나. 조금은 여유를 가졌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막막하진 않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이렇게까지 답답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앞이 꽉 막힌 기분은 들지 않았을 테고, 다른 길이 보였을 것이다. 다른 방법이, 다른 우회로가 어쩌면 또 다른 좋은 길이 어딘가 있었을 텐데. 내 눈에도 어떻게 보였을 텐데 말이다.
이 길의 끝까지 나는 가 보았다. 아플 때까지, 내 몸이 버틸 수 있는 때까지. 내가 생각한 길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았기에 이 길이 아님을 알았다. 이 하나를 알았고, 그래서 무서웠다.
다시 시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불 꺼진 부엌에 홀로 앉아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다시 돌아오기엔 이미 너무 먼 길을 간 사람, 후회했을 땐 이미 늦었다는 사람... 겪지도 않은 일을 향한 강렬한 기시감을 느꼈을 때 나는 너무나 무서운 동시에 안도했다.
나 정말 열심히 했구나.
진짜 열심히 살았구나.
열심히 한 줄 알고 있었어. 열심히 잘하려고 했어. 나 노력했어. 누구한테도 인정받으려 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정말 노력했다. 타인의 평가가 모욕적이라 여겨질 만큼 열심히.
그리하여 나는 어느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였다. 나 자신조차 나를 보살피지 못했다. 나는 너그럽지 못했고, 너그럽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는 정말 그러했다.
내가 노력하기 때문에
한 번은 언니가 물었다. 어떤 대단한 사명을 띠고 있냐고.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어떤 대단한 사명을 띠고 있어서가 아니라, 아니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는 이루고자 했다. 내가 절실히 원하고 바라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노력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바쳐서 하는데 안 될 이유가 없다 생각했다. 내 능력에 대한 확신이 유달리 충만하거나, 혹 이때껏 바라는 바를 쭉 성공적으로 성취하는 통에 스스로를 과대평가해서가 아니었다.
솔직히 글쓰기라는 게 국가의 중대사도 아니고, 몇 년을 내리 준비하는 시험도 아닌 경쟁상대도 없는 정말 개인적이고도 사소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사소한 일. 예를 들면 (요리를 자주 하진 않지만) 오늘 먹을 저녁 메뉴 선정 같은 것. 오늘은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고민하는 딱 그 정도의 선택. 작은 일이지만, 나의 기분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적이고도 사소한 일 말이다. 그런 이유로 글쓰기란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려움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후 욕심은 무럭무럭 자라났지만 최초의 목표는 그랬다) 상을 원했던 것도, 출판을 하고 싶은 것도, 돈을 벌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물론 바라지 않는다 해서 욕심이 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힘들어도 행복했고, 무리해도 좋았다. 속도가 나지 않고 결과가 따라오지 않아 실망한 적은 있어도 기쁘고 행복하게 이뤄내고자 했다.
그러나 너무 당연한 일로 생각했던 탓일까. 마땅히 이뤄져야 하는 일로 생각했던 탓일까. 오롯이 내 노력에 달린 일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내가 이뤄내야 하는 일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짐이 되어버린 걸까? 결코 짐이라고 생각한 적 없는데 말이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글을 쓸 때야 알았다. 너무나 당연한 명제를. 나의 인지를. 그리고 내 바람 속에 숨겨져 있던 치명적인 오류를.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돼야 할 이유는 없다.
어째서 반드시 되어야 하는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단지 내가 바랐을 뿐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꼭 일어나야 하는 일은 없다.
세 번의 기억
그 해 나는 참 많이 울었다. 가족들은 내 울음에 익숙해졌고, 나마저도 그랬다. 뇌 속의 세로토닌 농도가 확연히 낮아진 탓인지 눈물이 참 쉽게도 쏟아져 내렸다. 울고 나면 잠시나마 기분이 상쾌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듯도 해서 주변의 호들갑만 없다면야 우는 게 썩 나쁘지도 않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아무도 호들갑 떨지 않았지) 눈물 마를 날 없었던 시절 나는 눈치 보지 않고 짜잘짜잘 맘껏 울었다.
그럼에도 크게 세 번 운 기억이 있다. 한번 한번 내 안의 무언가가 어찌할 바 모르고 무너져 내렸다.
처음엔 내 통증을 처음으로 수긍해 준 준 신경과 의사 앞에서였다. 진료실에 앉아 내 말을 경청하는 의사 앞에서 끊일 듯 끊이지 않고 더듬더듬 내 상태를 설명할 때, 순간 주체하지 못한 울음이 울컥 터져 나왔다.
두 번째는 내 현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하는 엄마 앞에서였다. 힘겹게 입을 뗀 나를 옆에 두고 시선조차 주지 않는 엄마를 보며 서러운 울음이 부지불식간에 쏟아졌다.
그리고 세 번째는 노력해도 돼야 할 이유 없는 현실 앞에서, 이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눈먼 봉사처럼 앞으로만 내달렸던 나 때문이었다. 그래, 마지막 한 번은 이 글을 썼던 지금 이 자리, 모니터 앞, 바로 내 앞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