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후시딘 바르는 중입니다

by 시에나

밤 9시쯤이었을까. 퇴근 후 아이와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핸드폰 전화가 울렸다. 부장 D였다. 분명 오늘 술 마시러 간다고 했는데, 설마 이 시간에 나오라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안 받았다가는 다음날 무슨 꾸지람을 들을지 모를 일이다. 일단 받았다.

"어, 어디냐"

약간 취한 듯한 D의 목소리. 뭐하냐고 하는데 이미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밤중에 뭐 하겠니. 야근 아니면 댁 말고 다른 사람이랑 놀고 있겠지요. 같이 일하게 된 지도 좀 되었는데, 친해질 겸 본인이 있는 고깃집으로 오라고 했다. 여기 A, B도 있는데 친해지면 좋을 거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해서 나를 고민하게 했다. 어떻게든 D와 인연의 첫 단추를 끼워야 D와 나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성과와 승진 같은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기에. 신랑은 고맙게도 아이는 자기가 재울 테니 다녀오라고 했다. 아이에게는 갑자기 나가서 미안하지만, 엄마 젤리 사서 들어오겠다는 말로 달래고 길을 나섰다.


술자리는 내가 도착한 후로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D도 내가 자기 말 듣고 나와줘서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새로운 사람이 왔는데 이대로 끝낼 수 없다며 2차를 갔다. 그 새로운 등장한 인물은 다름 아닌 '나'였기에 자석처럼 이끌리듯 무리를 따라갔다.

그러나 2차로 간 곳은 예상하지 못한 곳이었으니. 내 또래끼리는 절대 가지 않을, 아니 어디 있는지도 모를 '라이브 7080'. D는 40대 후반이 되면 노래방보다 이런 주점이 재밌다고 했다. 노래방보다 방도 넓고, 흥을 올려주는 사람들도 있어서 좋다나.

실제로 김홍도 작가가 그린 풍속도 '씨름'이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씨름판에서 씨름하듯 누군가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동네잔치에 엿장수가 기본으로 배회하듯 반주자가 전자피아노 반주를 한다. 씨름판, 주점 모두 관객들은 신기하게 혹은 신명 나게 주인공을 구경한다. 씨름판과 주점이 다른 것은 주점의 관객 중 몇몇은 사실 거기 있고 싶지도 않은데 흥을 돋우려고 열심이라는 점이다.

'난 노래를 좋아한다. 모든 노래를 사랑한다.' 마더 테레사 수녀의 인도주의 신조로 D와 일행이 부르는 대다수 노래를 좋다고 생각하려 애썼다. 노래 제목도, 가수도 모르는 7080 노래들이었지만, 몇 곡은 진짜 좋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하이네켄 맥주 한 병에 만 원으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술을 편하게 먹을 수 없었고, 그 와중에 테이블을 옮겨 다니면서 손님들한테 술을 권하는 여자 사장님이 신경 쓰였다. 우리 일행 중에 몇몇 여자도 있었지만, 술 권하는 여성이 있는 공간에 동성으로서 앉아있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노래 한 곡 끝날 때마다, 먼저 간다고 이야기할까 망설였다. 정작 D는 자기 지인들과 노래하고 노느라 나를 신경도 안 써서 내가 여기 왜 같이 있는지 싶었다. 그럼에도 망설임은 입 밖으로 나오기에 무거워서 쉬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평소 친동생처럼 아끼는 후배 H가 있어서 때때로 키득대고, 때때로 부장님 노래 부를 때 같이 나가서 박수치고 코러스를 맞추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이미 이곳에 들어와 있고, 피하기에는 후폭풍이 예상되니까. 영혼은 잠시 몸 밖으로 내보내고 분위기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긴 채 휩쓸려 갔다.

일행은 적당히 놀고 나왔다. 나도 조금 취했고, 생소한 공간에서 기를 다 소진했으니 그때 집에 가도 됐을 텐데. D는 지금 집에 가는 게 조금 아쉬운 것 같았고, 나도 기왕 저녁에 시간 낸 김에 D랑 한 잔 더 해도 될 것 같았다. 내가 나서서 한 잔 더 하자고 했을까. 선후 관계는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건 이 짧은 찰나가 몇 년이 지난 이 순간까지 심장 깊숙이 못 박힐 시간을 만들었다는 걸 그때는 전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후배 H와 나, D는 노래주점 근처 술집에 들어갔다. 우리는 서로 술을 마시니, 안 마시니 실랑이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D는 나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냐?"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글쎄요. 다른 부서랑 다툴 일 있으면 가서 잘 싸워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할까요."

당시 나는 부서에서 나름 일 잘하는 편으로 궂은일이 몰렸고, 주어진 과제를 잘 해결했기에 선후배들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다만, 나와 연차가 비슷한 선배 중 몇몇과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들이 후배들에게 부당하게 일을 시키면, 나는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서 그들을 곤란하게 하기도 했다.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말이다. 좀 더 부드럽거나 완곡하게 표현해도 되었을 것을. 그들에게는 내가 눈엣가시였을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부장 D가 들었던 걸까. 아니면 D 자신만의 생각이었을까. 그는 나에게 한 질문에 힌트를 얹는다.

"넌 상상도 못 할 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무슨 말씀이냐고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이었다. 주말드라마의 마지막 '다음 이 시간에'를 본 것처럼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사실 알아서 뭐에 쓰겠냐마는 술김에 나는 계속 묻고, 그는 계속 제대로 답하지 않은 채 몇 분이 흘렀다. 뭐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지.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D도 잠자코 있다가 대답했다.

"넌 워킹맘이니까. 워킹맘은 한계가 있어."

워킹맘은 육아를 핑계로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고, 또 아이를 임신할 수도 있고,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찍 퇴근해야 하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신경 쓸 일이 많아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거다. 그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퇴사 희망과 또 다른 아이를 걱정해 주다니. 난 불현 오한이 온 것처럼 부들대며 반박했다. 난 계속 일할 거고, 둘째 생각도 없다고. 남들 커피 마실 때 난 일하고, 아이가 아프더라도 난 회사에 나오고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그래도 워킹맘이잖아."

와 이 사람, 광교산 정상에서 외친 소리인가. 내가 무슨 이야길 해도 그는 메아리처럼 반복해서 같은 답을 했다. 그가 나에게 '선배들을 좀 더 예우해 주는 게 어떻겠느냐.' 혹은 '이번 보고서가 좀 부족하던데 원인 분석을 더 깊이 있게 하려고 노력하는 게 좋겠다.'라는 등 업무에 대한 태도나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을 보완하자고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내가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시종일관 '워킹맘'이라는 단어만 반복하니 마음속에 분노만이 가득 찼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했다. 갑자기 D는 와이프의 전화를 받고 집에 빨리 오라고 한다며 일어났다. 철저히 무시당한 것 같아 마음은 어둠 속에 있었기에, 배웅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수십 년간 사회에 길러진 내 몸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나가는 문으로 모시고 있었다. D가 골목 저 끝에서 꺾어서 들어가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간, 마음속이 한밤의 태풍 속 바다처럼 파도쳐서 일어나 있을 수 없었다. 계절은 늦가을, 서늘한 밤이었지만 술집 앞에 주저앉았다. 이제껏 내가 했던 노력이 다 물거품인 것 같았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일 지구가 끝날 것처럼 꺼이꺼이 목 놓아 운 게 오랜만이었다.

일하는 엄마라서, 회사에서의 입지가 단칸방처럼 작을 수밖에 없는지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했다. 나는 사장도 아닌데, 종업원은 회사에서 주어진 일 잘하고, 가끔 선후배들과 술자리를 함께하면서 분위기 좋게 우애를 쌓으면 되지 않나. 무엇을, 얼마큼 해내야 회사에서 내 위치가 24평 아파트 한 채쯤은 나오는 걸까. 왜 나는 일하는 엄마라는 이유로 그들의 기대가 더 높은 것 같은 걸까. 오밤중에 불러도 충성을 다하는 개처럼 나왔건만, 그가 하는 이야기는 먼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다시 말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워킹맘의 한계가 걱정된다는 건지 그 당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유독 회사 가기 싫었지만, 출근했다. 지기 싫었다. 왜 내가 그런 말을 듣고 살아야 하는지 따지고 싶었다. 다른 부서와 마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쌈닭이라고 불릴 만큼 잘 대치하는 나이다. 하지만 그날, D가 내 자리에 찾아왔을 때는 마음 편히 째려보지도 못했다. D는 어제 자기가 불러서 나와줬다며, 너무 좋았다고 주변 동료들도 들으라는 식으로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내 표정은 좋을 수 없었다. 그러고 있으니, D는

'아 왜 그래.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와, 전날 밤처럼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면서 한숨이 나왔다. 능구렁이 같은 D는 적반하장으로 적당히 얼버무려서 상황을 빠져나가려는 게 뻔히 보였다.

자기도 기분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며, 왜 말대답했냐는 것. 머릿속에는 이미 물어보려고 준비한 시나리오를 수십번 돌려놔서 그냥 재생 버튼 누르면 와르르 쏟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미리 만들어둔 시뮬레이션에 추가 영향인자가 들어왔다. 미안하다고 안 할 태세라는 것. 어제 왜 그렇게 말했냐고 따지듯 물으면 D는 정말 서운하다고 하면서, 얘 이상하다고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닐 수도 있다. '참아야 한다. 참자.'

참는 것 말고는 달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나 자신을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마저도 일에 치여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마음 깊숙이 넣고 마음 상자를 닫아두었다. 그러는 동안 이미 생긴 상처는 아물기까지 몇 달이 흘렀고, 터지지 않고 줄곧 참아냈다.

더 이상 '넌 워킹맘이니까' 같은 소리 듣고 싶지 않아, 일하는 시간만큼은 남자 동료들보다 열심히 달렸다. D는 그날 밤 내 패기를 본 건지 모르겠지만, 그 후 종종 성과를 낼 기회를 주었고, 난 종종 기회를 잡았다. 결과만 보면 그는 내가 더 단단해지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난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오늘도 보고서를 완성하기 위해 또 다른 부장 W에게 아침, 점심, 저녁으로 훈계를 들었다. 상사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이를 키우기 버거운 수준의 업무량과 종종 견디기 힘든 수준의 지적에 부들부들한다.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은 다른 사람과 상황으로부터 크고 작게 긁혔다. 이제껏 그저 버텨내는 데에 집중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내 마음을 소중하게 돌보지 못했을 때 더 크게 긁혔다.

이제는 달라지려고, 나를 지켜내려고 힘내본다. 그래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대우를 받으면 종종 말하기도 한다. 가령, 다른 동료들은 이미 거의 다 퇴근했을 때, 나도 퇴근하면 '벌써 가?'라고 묻는 선배가 있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거의 매일 그랬다. 그 선배는 장난이라고 했지만, 난 내 자신이 다시 남들에게 워킹맘이라는 틀에 갇힐까 봐 무서웠다. 선배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선배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다른 사람들은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업무는 다하고 갑니다. 혹시 급하게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오전에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모난 부분이 있겠지만 어떠하리. 나도, 그도 모난 것이니 서로 점점 둥글어질 것이라 예상한다.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나도 모르게 소중한 내 마음이 다치고 있었다. 연습이 필요하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하찮은 사람들에게서 귀한 것을 지키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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