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위로 낙엽 하나, 툭

by 시에나

차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떨어질락 말락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이파리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신랑 H와 나, 딸 J 셋이서 조촐하게 자연 속으로 잠시 들어온 짧은 캠핑. 얼른 자릴 잡고 쉬기 위해 부지런히 텐트와 식기를 꺼냈다. J는 열한 살 꼬마 인생의 반 이상을 캠핑러로 살아왔기에, 우리 부부가 텐트를 치는 동안 주변에서 흥밋거리를 스스로 찾는다. 이번에는 근처에서 손톱만큼 조그만 버섯을 찾았다. 그녀는 이 버섯을 먹어도 될지, 만져도 될지, 어떻게 자랐는지 작은 입술과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게 이것저것 물었다. 귀여운 소녀에게 세상은 궁금한 게 천지다.

그녀가 버섯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텐트 치던 H한테 다가가 놀아달라고 졸랐다. 바쁠 게 없는 그는 씩 웃으며 텐트 안에 넣던 폴대(텐트 외형과 구조를 유지하게 하는 금속 막대)를 땅에 던지고 그녀를 안아줬다. 그러고는 갑자기 왈츠를 흥얼거리면서 J의 양손을 맞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 아빠, 이게 뭐야. 내가 놀아달라고 했지, 언제 춤추자고 했어. 으하하."

J는 깔깔대고 웃으면서, 이내 싫지 않다는 듯 아빠가 이끄는 대로 주꾸미 두 마리가 헤엄치듯 형체 없이 움직였다. 나는 손도, 발도 모두 엉망인 왈츠 댄스를 보면서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졌다. 그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급하게 핸드폰을 찾아 영상을 찍었다. 살랑 바람결에 그들 뒤 배경으로 나뭇잎 몇 개 스르르 떨어져 내려왔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는 푸르름을 지키고 싶지만 밤낮 서늘해진 기온에 별수 없이 가을을 받아들이며 낙엽 빛으로 물드는 중이었다.


지나가던 사장님이 우리보고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며 걸음을 멈췄다. 요새 바빠서 못 왔다고, 그래도 결혼기념일이라 시간 내서 왔다고 답하며 우리도 반갑게 인사했다. 그럼 더 좋은 데 가야지 여길 왔냐고 너스레를 떨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여기가 사람도 적고 한적해서 북적거리는 호텔보다 좋아서 왔다는 소리는 사장님이 듣고 마음 아파할까 봐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캠핑장은 특히 가을에 오면 더 좋다. 캠핑장이 산 중턱에 있는데 이 산에 밤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텐트도, 테이블로 다 폈겠다, 밤을 주우러 가보자.

한 5분 산을 오르니, 바로 그야말로 밤 천지. 길에 밤송이 가시가 지천으로 널렸다. 밟으면 운동화도 찢고 들어올까 봐 살금살금 걸었는데, 다행히 그 정도로 위험한 녀석들은 아니었던 걸로. 밤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였을까. H는 밤 삶아 먹으려고 씨알이 굵은 걸 찾아, 작은 눈을 크게 뜨고 허리를 한껏 굽혀 밤송이들을 샅샅이 살폈다. J는 자작곡을 흥얼거리며 자기 닮은 쪼꼬미 귀여운 밤알을 찾아 헤맸다. 집에 가져가서 밤에 눈코입을 그리고 이름을 붙여줄 거라나.

나는 잘 익은 밤을 보기만 해도 올 한 해 잘 지나가는 것 같아져, 큰 밤송이에 밤알 세 개가 나란하게 온전히 잘 들어가 있는 걸 찾았다. 뒤적거리며 몇 걸음 안 갔는데도 금방 찾았다.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밤송이에 꽉 들어찬 게 내 마음도 따스한 기운이 차올랐다. 기어다니는 아기 볼살처럼 볼록하게 배가 나온 밤알만 쏙 빼서 H에게 갖다줬다. 왜인지 그는 나를 칭찬해 줬고, 그런 칭찬을 들은 나는 왜인지 기쁨이 슬며시 번져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저녁 식사는 H가 요리했다. 그는 만두나 동치미같이 손 많이 가는 음식을 종종 한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미국 바비큐 다큐멘터리를 보더니, 나이 들면 바비큐집 사장님이 하고 싶어졌단다. 그래서 오늘 먹을 음식은 이미 집에서부터 정해져 있었다. 남이 해주는 음식은 뭐든 맛있으니 땡큐다. 그는 집에서 이미 몇 차례 해보고는 작은 주방에 그릴도 없어 아쉬워했던 터였다. 이번에는 얼마나 맛있게 만들지, 나는 내심 궁금했다.

누가 보면 수십 년간 바비큐 요리를 전념한 장인처럼 H는 바비큐 그릴에 고기를 얹어놓고, 서너 시간 동안 때때로 고기 위에 바비큐 소스를 얹었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서 씨익 웃으며 그저 조용히 바라만 봤다. 무언가 몰두해 있는 남자는 볼수록 매력적이어서 계속 보고 있었다.

갓 그릴에서 나와 따끈한 바비큐는 돼지고기임에도 부드러우면서 육즙은 가둬져서 으스러지지 않고 탱글탱글했다. 적당히 스며든 소스도 한몫했다. 그래, 그렇게 열심히 만드는데 맛없으면 안 되지. 나와 J는 쉴 틈 없이 먹는데, H는 옆에서 1시간 더 익혔어야 한다며 멋쩍은 소리를 했다. 그래도 싹 비운 그릇을 보고 '뭐야, 벌써 다 먹었어?' 하며, 쟁반을 치우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식사 후 영화도 한 편 보는데, 약간 쌀쌀해졌다. 미리 지펴둔 모닥불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따뜻한 온기가 마음까지 녹여 푸근했다. 영화는 '그린 북'이라는 60년대 미국에서 흑인 피아니스트가 겪는 실화 바탕의 영화로, 재즈 피아노곡을 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영화도 H가 미리, 내가 좋아하는 부류로 고민해 온 듯했다. 영화 속 음악을 듣다가 때때로 타닥타닥 장작 나무 타는 소리에 이끌려 불빛에 시선을 뺏겼다. 잠시 불멍을 하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영화로 빠졌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J가 춥다며 내 무릎에 폭 올라왔다. 나도 추우니 그녀를 꼬옥 안고 있었다. 그녀 등 뒤에 뺨을 살포시 대고 있는데, 어깨 위로 낙엽 하나가 툭 떨어졌다. 깊어 가는 가을밤, 하늘에 점 하나를 따스하고 무심하게 툭 찍는 것처럼.


잘 준비를 하고 텐트에 누웠다. 우리 부부는 가운데 J에게 잘 자라고 속삭였다. 셋이 나란히 붙어있으니, 마치 낮에 본 밤송이 같았다. 밤톨 세 개가 이리저리 서로를 안아주며 장난치다, 밤송이에 포근한 온기를 천천히 채웠다.


2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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