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J가 유치원 다닐 때 하루에 한 번, 밥 한 끼는 같이 먹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신랑과 나는 둘 다 회사에 다니면서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아이를 유치원을 졸업시키자고 생각을 모았다. 힘들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나보다는 신랑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아이를 키우려는 의지가 컸다. J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손녀의 집에서 멀거나 건강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그래 까짓거, 한번 해보자고.' 결심은 쿨하게 했지만, 주어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내 상사는 아이와 직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하나는 포기하는 게 어떠냐고 맑은 눈으로 태연하게 물어보며 야근과 성과에 대해 은근한 압박을 해주었고, 동료들은 내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날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들보다 일찍 퇴근하는 날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에서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저녁 6시 반까지는 퇴근하려고 기를 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J는 사내 유치원에 다녀서 다른 곳보다 이른 시각부터 늦게까지 있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부모가 봐주거나 칼퇴근하는 엄마들이 많아 저녁 6시면 열에 일곱은 하원하는 터라, 하원 시간대에 J는 누군가의 '엄마 왔다'는 소음에 혹시 내 차례인가 하며 창문을 바라보면서 기다렸을 것이다. 그랬을 J만 상상하면 날 기다려줘서 고맙고, 한편으로 늦게 오는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진다.
내가 도착해서 거의 꼴찌로 이름이 불려서 나오면, 늘 하던 놀이를 내팽개치고 후다닥 달려 나와서 나를 반겨주었다. J가 달려와 안길 때 기쁨, 슬픔, 화남, 사랑스러움과 같은 만감이 교차했지만, 기쁜 마음이 가장 커서 그 시간이 하루 중 엔도르핀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저녁밥은 그래도 엄마가 차려서 주고 싶어서 주로 집에서 먹었다. 힘들거나 너무 늦게 끝나면 할 수 없이 외식했지만. 반찬을 많이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 하원 길에 반찬 두세 가지를 사 들고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 주말에 끓여둔 국이나 동치미, 반찬가게의 반찬, 그리고 따뜻한 반찬 한두가지 더 만들어서 밥을 먹였다. 휘뚜루마뚜루 차린 저녁 상차림이었지만 따뜻한 밥을 해주는 것에 만족했다.
밥상에서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거나 그날 만든 작품에 대해서 종알거리면서 해주는 J의 이야기가 분홍, 빨강, 하늘색이 되어 내 삶에 색을 입혀주었다. 엄마한테 빨리 와달라고 투정 부리지 않고 잘 지내줘서 고마웠고, 나는 나대로 나중엔 열심히 사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길 거라며,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게 행복이려니 하며 하루하루 지냈다. 주변에서 안 힘드냐며 일하면서 아이 키우기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괜찮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는 즐거운 기억만 남기고 불편하거나 힘들었던 기억은 의도적으로 지우려는 습관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아이를 키우는 나날들이 마냥 흐뭇하고 기쁜 줄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날을 지내던 5년째부터 슬프지 않은 상황에서 눈물이 나왔다. 조금만 기쁘거나, 누군가에게 사소한 고마움을 느끼거나, 혼자 운전할 때 말이다. 점점 눈물샘이 고장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동해서 운다기에는 그 역치가 너무 낮았다. 혹시 또 눈물이 날까 봐 일상생활을 걱정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나서야 내가 깊은 감정을 억누르고 지내서 평소에 이미 감정이 턱 끝까지 차올라 있어서 작은 감정의 변화로도 몸은 눈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걸 알았다. 하원의 마지노선인 저녁 6시 반까지 어떻게든 일을 끝내고 아이를 보러 가야 하기에 어떻게 해서든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긴장감이 기본 세팅 값으로 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를 돌보는 육아와 아이를 재우고도 해치워야 할 집안일로 인한 스트레스도 풀옵션으로 추가되었다. 이런 조건들을 '괜찮다'라는 스스로 거는 주문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그냥 넣어둔 게 문제였을지 모른다.
여기에 더해서 신랑과 보내는 시간도 극히 제한적이어서 마음으로만 의지했지, 물리적으로 마주 보고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무렵 우리는 아침에 신랑은 아이 등원시키고, 나는 빠른 출근을 했다. 저녁에는 반대로 신랑은 야근하고, 나는 아이 하원시키는 바람에 평일을 함께할 수 없었다. 주말에도 각자 출근이나 운동, 친구 모임으로 서로 오랜 시간 붙어 있지 못했다.
치열하게 살았음을 자각하고, 나를 돌아보며 여유를 찾으라는 상담 솔루션을 받은 후 실천하려고 조금씩 노력했다. 전에는 눈물이 날 때 이유도 생각하지 않고 멈추게 하기에만 급급했다면, 이제는 때때로 실컷 울기도 하고 그때 느끼는 감정도 더 깊이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여전히 가끔 울지만, 횟수는 줄어들고 있고, 갑자기 눈물 나는 증상은 점점 호전되고 있다.
지내고 보니 앞뒤 돌아보지 못한 채, 일상을 바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돌아보면서 살라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내마음의 부작용에 대비하라고 말이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내 마음이 어떤지 살펴 가면서 지내고, 한두 달에 한 번쯤은 친정엄마나 타인의 도움을 받아 신랑이랑 맛집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래야 한껏 긴장감이 올라가 있었더라도 가끔 숨통을 트이게 해서 느슨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 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나는 아이와 저녁 먹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 살필 틈도 없이 미친 듯이 질주해서 일을 끝내고 아이와 함께하는 밥 한 끼 먹으면서 얻는 노란색, 하늘색 그 무지개 색감의 감정은 그 무엇으로도, 돈 주고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소중한 기쁨이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