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낭송 Dec 25. 2023

체호프, 『베짱이』를 읽고

독서 모임 시리즈: 체호프 단편선



‘베짱이’라는 제목은 저명한 이솝의 우화 중 ‘개미와 베짱이’를 우화한 듯하다. 이를 증명하듯, 이 소설 속에는 개미처럼 보이는 한 명의 남자와 베짱이처럼 보이는 한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두 명은 부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작품은 개미와 베짱이가 서로 결혼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가져와 ‘올가 이바노브나’의 가치관을 파헤치고 있다.


이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올가 이바노브나의 성격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것은 그녀가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상당히 연극적이고 자기극화self-dramatization적이라는 부분에 있다. 예컨대 드이모프와 결혼을 하는 장면에서도 올가 이바노브나는 쉴 틈 없이 상황을 극적으로 재구성한다.  저 또한 밤잠을 못 이루고 아버지 곁에 앉아 있었는데그런데 갑자기맙소사이 사람의 착한 마음씨가 나를 정복한 거지 뭐예요드이모프 씨도 나에게 반해 버렸지요정말이지 운명은 그토록 변덕스러운가 봐요. (어느 아름다운 저녁에 갑자기그가 청혼을 했어요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남편이 된 거예요정말 이 남자에겐 뭔가 강렬하고 압도적인 곰 같은 구석이 있지 않아요?” 마치 저잣거리의 전기수처럼 연애 스토리를 늘어놓는 부분은 올가 이바노브나의 성격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올가의 삶은 극적이다. 결혼마저도 진실적이고 장기적인 교류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청혼을 받고 결혼을 한다. 마치 어느 드라마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그런 올가 이바노브나의 디자인적인 센스는 꽤 예술적이다. 자신과 남들의 스케치를 응접실의 모든 벽에 걸어둘뿐더러, 피아노와 가구 옆에는 중국 우산, 이젤, 색동 헝섶, 단검, 반신상, 사진과 같은 오로지 장식decorated만을 위한 장식들로 가득하다. 더욱 재밌는 것은 식당은 러시아풍으로 구성된 반면, 침실은 베네치아식으로 장식하여 미적이기는 하나 취향이 일관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실질적으로 그녀의 성격이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유명한 사람들과 재빨리 사귀고 가까운 사이가 되는 일에서만큼 그녀의 재능이 돋보이는 경우는 없었다누구든 그녀와 처음 만나서 다만 몇 마디라도 칭찬을 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면 그녀는 그날로 당장 그 사람과 친구가 되어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들을 갈구했으며 다른 무엇으로도 그 갈증은 채워질 수 없었다한 무리가 떠나가서 잊혀지면 그 뒤를 이어 새로운 무리가 나타났지만 그녀는 이들에게 금방 익숙해지거나 싫증을 느꼈다그러고는 탐욕스럽게 새로운 거물들을 찾고 또 찾는 것이었다무엇 때문일까?”


이바노브나는 어째서 인간관계에 있어 갈증을 느끼는가? 이바노브나의 심리는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상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문학사적으로, 또는 예술적으로 이바노브나가 지닌 인물의 성격은 흔히 다루어져 왔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에 등장하는 블랑쉐를 보자면, 블랑쉐는 어떤 한 집단에 머무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신분을 세탁하듯 관계를 세탁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블랑쉐는 성적인 부분에서 신경증을 발현하는데, 이바노브나는 비록 불륜을 벌이기는 하나 조금 더 자신의 삶을 희곡화한다는 지점에서 조금 더 다각적인 정서적인 결핍 증상을 보여준다.


인물의 갈등은 결핍으로부터 온다. 이바노브나의 결핍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가? 표면적으로 이바노브나는 타인의 애정과 인정을 결핍으로 느끼는 데에서 발현하는 심리적 인격장애를 표방한다. 이러한 이바노브나의 결핍은 정적이고 단순하며 우직한 드이모프는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자극적 애정을 추구한다. 이바노브나는 감정이 심하게 불안정하고, 충동적이며, 깊이가 엎고 피상적이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도구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대상화하기 위한 도구로 ‘특별함’이라는 가치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를 개별적인 존재로서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리어 특별한 행위를 통해 특별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올가 이바노브나에는 본질적으로 각별한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여길 때 우울과 불안을 느낀다. 또한 랴보프스키는 이바노브나와 동일한 성격 양상을 띠지만, 훨씬 더 불안정하고 나르시시즘적인 면모를 지닌다. “그래요…… 이 구름은 아우성을 치고 있군요. 구름이 저녁 빛을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前景은 어쩐지 찢겨져 있는 것 같은데…” (…) 그러나 그가 종잡을 수 없는 얘기를 하면 할수록 올가 이바노브나는 알아듣기가 더 쉬웠다. 어째서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할수록 올가 이바노브나는 더 알아듣기 쉬웠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유아론적인 사람은 자기 세계가 견고하기 때문이라고 확정 짓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유아론적이기 때문에 자아가 피상적인 인물이 있다. 특별함을 추구하는 이들은 타인이 알아듣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하는 과장적 화법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언사는 대체로 모호하고 세부적이지 않으므로, 도리어 일시적인 특별함을 연출하는 데 더욱 적합하다. 이러한 인물 형상을 체호프는 ‘베짱이’로 비유한다.


반면 드이모프라는 인물이 지나치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기 위해 도리어 평면적이 된 인물이다. 다시 말해서, 드이모프는 체호프가 주장하는 인물상이다. 체호프가 주장하는 삶의 태도란 무엇인가? 드이모프는 지나치게 평범하고, 재미가 없다. 그렇지만 그는 성실하다. 당신 친구들은 자연 과학도 의학도 몰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그들을 비난하지는 않잖아모두에게는 각자의 일이 있어나는 풍경화나 오페라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런 생각은 해만약 똑똑한 사람들이 그런 일에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면 다른 똑똑한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거금을 지불하지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니까나는 이해를 못 해하지만 이해를 못 하다고 해서 거부한다는 건 아니잖아.” 체호프가 말하는 이 이야기의 중심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삶의 평범함을 논한다. 랴보프스키로부터 사랑을 배신(…) 당한 올가 이바노브나는 독약을 마시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얼마나 자신의 사랑이 누군가로부터 극적이고 특별하게 보일지 생각하지만, 끝내 이러한 상상으로부터 도달하는 랴보프스키와의 관계의 끝은 비루하고 고질적이다. 랴보프스키가 걸신들릿 듯이 먹고 있는 양배춧국처음에는 바로 그 소박함과 예술적인 무질서 때문에 사랑했던 이 모든 생활이 지금은 그녀에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이바노브나는 이러한 사랑의 결말을 권태라고 정의한다. 즉 더없이 무료하게 서로가 멀어졌다는 이야기다. 사랑에 있어 비극적인 이별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특별하게 보였던, 또는 그렇게 여겼던 랴보프스키와의 사랑은 지루한 권태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정말로 특별함이라는 건 존재할까? 특별함이라는 건 결국 내가, 너가, 그리고 우리가, 우리 사회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어째서 올가 이바노브나는 불행한가?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삶의 방식대로 살아갔는데도 말이다. 반면, 드이모프는 과연 행복했던가? 드이모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올가 이바노브나는 과연 행복했을까? 드이모프처럼 살아가는 당신은 과연 행복한가? 반면, 올가 이바노브나에서 스스로를 투영하는 당신은 과연 지금 행복한가?



작가의 이전글 체호프, 『공포-한 친구의 이야기』를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