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소송』에 대하여

by 박낭송

문지기 이야기는 『카프카 단편집』(종합출판범우), 『카프카, 비유에 대하여』(아름다운날), 『소송』 등에 등장하여 프란츠 카프카 세계의 중심을 꿰뚫는다. 사실상 『소송』의 줄거리를 요약한 알레고리라고 볼 수 있는데,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꽤 반복적이고 명확하다.


1)“법 앞에 문지기가 서 있다.”


문지기가 지키는 문의 법은 단일하고 유일하다. 이 법은 오로지 시골 청년을 위해 창조되었는데, 이는 법이 인간 체계의 허위란 본질을 가리킨다. 과연 법이란 정의인가? 브레턴우즈 체제는 과연 ’진실‘인가? 문지기는 결국 ‘문을 닫는‘데, 넘나들기 위해 존재하는 문을 법이라는 규칙을 만들어 환상 개체로 탈바꿈하는 헤게모니의 특성을 뜻한다.


법 앞의 문지기는 아마도 작중 판사, 변호사, 그리고 대중을 의미할 것이며 모든 법의 옹호자와 재생산자를 가리킨다. 우리는 허구의 규율을 지키며 살아가는 문지기인 동시에 시골 청년인 셈이다.


2)“허위가 세계의 질서가 되는 거군요.” (『소송』)


문지기는 존재 이유를 알 수 없고 그것의 정당성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법의 종사자다. 문지기의 원리는 법에 봉사하는 것에 가까운데, 결국 이는 현실 법의 원리이자 사회 헤게모니가 어떤 믿음으로 공고히 유지되는지 발설한다. (“푸조는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변호사들은 이를 ‘법적인 허구’라 부른다.”, 『사피엔스』)



법은 근본적으로 정의의 모습을 구현한다. 그러나 법이 거대한 헤게모니의 허구라면, 이 헤게모니를 창조하는 이는 누구인가? 홉스의 『리바이어던』 표지에는 왕관을 쓴 거대한 거인이 등장한다. 바로 국가이다. 국가는 칼과 십자장을 든 거대 군주이다. 국가는 일종의 빌라도다. (“예수가 재판을 받았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빌라도가 예수에게 직접 형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의 처분을 유대인들에게 넘긴 뒤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는 의미로 손을 씻었다고 했다.” 「법의 아름다움」, 길란)


법의 생명은 법의 지위를 신성화하는 자들의 믿음과 생산 체계로 연장된다. 문지기는 법에 종사하는 자이며, 시골 청년을 속이는 사기꾼이며, 동시에 K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판사이자 법에 아부하는 변호사이다.


실체가 없는 법에 우리는 복종해야 하는가? 카프카는 “모든 게 진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이에 ”필연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3) 요제프 K는 결국 법치 세계에 태어난 현대인들의 화신이다. 끝내 요제프 K는 사형 선고를 받고 “칼을 움켜잡아 자기 목을 직접 찌르는 것이 자신의 의무임을 분명히 깨”닫는데,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주위를 돌아본다. 그다음 철저하게 심장에 찔려 살해당한다.


트럼프 시대에 이르러 브레턴우즈 체제의 한계에 맞닿는다. 그러나 브릭스 또한 어떠한 해답이 될 수 없어 보인다. 진실이라 믿었던 세계의 체제가 필연성에 불과했음을 깨닫는 오늘날이다. 우리는 어떻게 문을 넘어설 것인가? 심장을 찔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 길란 작가의 <법의 아름다움>: https://munjang.or.kr/board.es?mid=a20103000000&bid=0003&act=view&ord=B&list_no=106048&nPage=2&c_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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