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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바람이 부는 날

by 소금별

오늘도 인생 동반자와 산책을 하러 집을 나선다. 나가는 김에 재활용 쓰레기도 하나씩 사이좋게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밖에 나와보니 며칠 전, 내렸던 눈이 거짓말처럼 녹고 있었다. 겉옷을 얇게 입고 나왔는데도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뿌옇던 하늘이 어느새 엷은 파랑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제 봄이네.” 남편이 봄의 기운을 느끼려는 듯 기지개를 켠다. 냉이가 돋고 있을 대지가 불현듯 떠올라 나도 잠시 봄인가 착각을 한다. 바람난 처자처럼 호미 하나 들고 냉이를 캐러 가고 싶다.


하천 위로 오리 한 마리가 힘겹게 날갯짓하며 떠오른다. 그 많던 오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며칠 전 하천을 거닐 때 보았던 그 많은 오리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천을 쭈욱 따라 걷는다. 날이 풀려서인지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조깅복을 입고 가볍게 달리는 사람도 보인다. 삶의 활력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봄이 저 앞에 보이는 것 같다.


호수공원에 도착해서 둥글게 걸어본다. ‘왈왈!’ 강아지 짖는 소리에 돌아보니, 귀여운 강아지가 낯선 우리를 경계하고 있었다. 강아지의 앙증맞은 경계에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까치 두 마리가 ‘꺅꺅’ 거리며 자리 다툼을 하고 기세에 밀린 한 마리가 총총거리며 도망을 간다. 저류지를 헤엄치는 오리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천천히 걸으며 그 한가로움을 즐긴다.


언제까지나 겨울일 줄 알았는데 시나브로 봄이 다가오고 있다. 봄의 섣부른 몸짓에 마음에도 연분홍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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