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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걸으며

by 소금별

집에 있기가 갑갑한지 남편이 먼저 산에 가자고 한다. 근데, 이 시간에 광주 무등산이라니! “거기 눈 많이 왔을 것 같은데!” 했더니 그러면 가까운 산에 가자고 말을 돌린다. 우리는 얼마 전에 갔었던 근처 야트막한 산에 가자며 집을 나섰다. 오늘도 고둥처럼 자신 안에 틀어박혀 있는 사춘기 아들은 우리와의 외출을 거부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부부만 단짝이 되어간다.


네비를 켜고 가는데도 길이 헷갈리는지 남편이 갈팡질팡한다. 나는 감이나 주변 건물, 이정표를 보고 길을 찾는다면 남편은 오로지 네비에만 의존한다. 네비가 편하긴 하지만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닌데 남편은 네비 바라기가 되어버렸다. 도로를 꺾어서 달리니 평평한 들판이 보였다. 아파트가 빽빽하던 장소를 고작 10분 벗어났을 뿐인데 논이 도로 양옆으로 시원하게 뻗어있다.


“어, 여기 그 학교잖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초등학교 분교가 보인다. 아는 건물이 나오면 그 길은 백퍼센트 맞는 길이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달려 전보다 더 쉽게 목적지에 다다랐다. 유명한 산이 아닌데도 차들이 제법 주차해있었다. 빈 자리에 주차를 하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산길에는 먼저 찾았던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었다. 앞서 걷는 남편을 따라 산길을 걷는다. “여기 미끄러워. 조심해!” 저만치 걷는 남편이 돌아보며 주의를 준다. 눈이 녹지 않은 산에 따뜻한 햇살이 비친다. 눈이 녹아 질퍽질퍽한 곳도 있고, 눈이 얼어서 미끄러운 길도 있었다. 평탄한 산행인데도 평지와 다르게 오르막, 내리막이 있으니 신경을 바짝 쓰면서 걷는다.


우리 앞으로 부부인 듯한 두 사람이 지나쳐 가고, 뒤에는 트로트 음악을 크게 틀고 나이가 지극한 두 사람이 따라오고 있다. 들어보지 못한 트로트가 무한으로 반복되어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은 이 길로 가볼까?” 우리는 정상쪽이 아닌 야영장 쪽으로 빠지기로 한다. “여기 봄에 오면 좋겠다.” 모처럼 산길을 걸으니 남편 기분이 좋은가보다. 남편 뒷모습이 갈수록 시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온다.


딱딱딱, 딱따구리가 나무를 뚫는 소리가 고요한 숲속에 울려퍼진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새소리가 들린다. 새소리가 나면 새에 관심이 많은 나는 절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배밑이 주황빛을 띠는 곤줄박이가 날아오른다. 박새보다 작아보이는 쇠박새가 나무 사이를 재빠르게 오간다.


산길을 걷는데 간간히 꺾여진 나무들이 보인다. 꺾여진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나무 같아서 의아해했더니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에 내린 눈이 습설이라는데 문득 폭설 피해로구나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눈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나무들이 꺾여져 버렸다.


산을 오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힘이 들지만 내려올 때는 그 오르막길이 내리막이 되어 힘겨움을 걷어가버린다. 미끄러워서 위태롭게 걸은 내리막길이 다시 되돌아올 때는 오르막이 되었다. 산의 그 오르막과 내리막처럼 인생에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길이 힘들다고 낙담할 것도 없다. 지금의 오르막이 언젠가 편안한 내리막이 되듯, 우리 인생도 결국은 지나가는 길 위에 있을 뿐이라는 걸 산이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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