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10분에 폭설이 내린다는 기상예보는 틀리지 않았다. 커피를 들고 창가에 다가가 흐린 하늘을 쳐다본다. 산책할 때만 해도 진눈깨비 정도 날리는 정도였는데 어느새 하늘이 잔뜩 흐려져 있었다. 집이지만 카페에 온 듯한 기분을 내려고 창가 의자에 앉는다.
하늘에서 눈들이 흩날린다. ‘카톡’ 하는 알람 소리에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도서관에서 있을 시민도서선정단 모임 공지가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모임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 추리고 추려서 올해의 책 선정을 한다.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오늘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읽었던 5권의 책 중에서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찬란한 멸종》을 재미있게 읽었다. 카톡에 올라오는 추천 책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가 많았다. 좋은 책이긴 했지만 나는 이 책이 함께 읽을 도서로 선정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망설임에 대답을 해주듯이 창 밖으로 어둠이 짙게 깔리자 눈발이 더 굵어졌다. “엄마, 올해 눈이 너무 많이 오는데?” 저녁을 먹고 난 아들이 말한다. “그러게.” 지난 주에도 폭설이 내렸는데 이번에 내리는 눈도 만만하지 않을 것 같다. 입춘이 지났는데 계절은 다시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세상이 어둠 속에 잠기면 내 속에 잠들어 있던 감성이 꽃이 피듯 열린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방으로 가고 거실에 우두커니 홀로 된 나는 라디오를 듣는다. 올해의 책 선정에 참여하려고 카톡을 열어놓고 바이올린 소리인지 현이 울리는 음악을 듣는다. 옆에 놓은 작두콩차에서 따뜻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음악은 어느새 샹송으로 바뀐다. 눈이 내리는 날 어울리는 잔잔한 노래가 잠들어 있던 마음속으로 흐른다.
창밖은 어둠에 휩싸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창가로 다가가 눈을 크게 뜨고 밖을 쳐다본다. 녹아서 얼었던 눈 위로 새롭게 내리는 눈들이 쌓인다. 아파트 안 도로는 제설작업을 해서인지 차들이 무리없이 달린다. 이따금 모자를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내리는 눈속에 파묻혀 모든 것이 고요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낮동안 방황하던 마음이 밤이 되자 차분히 가라앉는다. 산책하면서 ‘내 고향 남쪽바다’를 흥얼거리며 걸었을 때는 봄이 곧 다가올 것 같았다. 조팝나무, 황매화, 좀작살나무 곁을 지나면서 가까이 가지 않으면 구별하지 못할 앙상한 가지를 보았다. ‘봄이 오면 저 앙상한 가지에도 새싹이 돋겠지.’ 생각하며 마음을 한껏 부풀렸는데 눈이 내린다.
어렸을 때는 눈이 내리면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었다.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를 골목을 누비며 굴리고 굴리면 커다란 눈사람이 되었다. 그것도 시들해지면 비닐포대를 들고 언덕에 올라 미끄럼을 탔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눈이 내리면 우리는 마냥 신났다. 내 기억 속의 눈은 그랬다.
지금의 나는 눈이 내리면 길이 미끄러울까 걱정을 하고 나가지 못하는 답답함을 토로할 뿐이다. 기분을 낸다는 것은 고작 눈을 밟으며 아이처럼 걸어보는 것이다. 낮에 보았던 참새, 직박구리, 까치,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지금 어디서 이 눈을 피하고 있을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거실에 울려 퍼진다. 두 아들은 따로 둥지를 튼 아기새처럼 제 방에서 꿈쩍을 안하고 빈 둥지에 남은 나는 음악에 사로잡혀 있다. 차가 천천히 식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