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히 날리던 눈발이 무섭게 내리기 시작한다. 지난 밤에 내리던 눈이 새벽, 아침을 지나 오후까지 이어졌다. 온 세상이 설탕을 털어놓은 것처럼 새하얗다. 케이크 위에 슈가파운더를 뿌린 듯 창 너머 세상이 폭신폭신하다.
뉴스에서는 연일 폭설 관련 소식이 전해진다. 첫눈에 이어서 올 겨울 두 번째 내리는 폭설이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습설이라 비닐하우스 등 농가 피해 우려 소식도 들린다. 연이은 폭설과 강풍으로 하늘길과 바닷길도 막혀버렸다. 전국 공항에서 여객기가 결항되고 바다에서는 배편이 멈추었다. 지금쯤이면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들뜬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을텐데 명절의 달뜬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여름휴가보다 길다는 설 연휴에 기상예보대로 전국이 폭설로 들썩인다.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 소식이 들려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제부터 쉴새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고향 가는 길도 막혀버렸다. 우리는 이번 설에 집을 떠나지 못했다.
하루종일 시선이 창 밖으로 향한다. 세상의 모든 눈을 끌어모은 것처럼 눈들이 쏟아지고 있다. 오늘 시골에 갈 수 있을까? 없을까? 내 마음은 온통 바깥으로 향하고 있다. 눈이 쌓여 길이 막혔다. 마음마저 어디론가 가로막힌 듯한 느낌이다. “엄마, 오늘 시골 못가?" 아들이 기다림에 지친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릴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명절은 가족이 모여야 제 맛인데 시골도 못가고 친정도 가지 못한다. 눈이 쌓여 도로가 미끄러운 것도 있지만 정작 오늘 남편이 당직을 섰다. 아침에 남편이 “시골 안 내려가니 좋지?” 하며 농담처럼 웃었다.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그 말에 담긴 속뜻이 귀에 맴돌았다. 내가 시댁 갈 때마다 표정이 어두웠던 걸 알고 있었던 걸까? 폭설 덕분에 내 불편함은 피했지만, 마음 한편이 복잡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신다. 명절인데 떠나지 못한 탓인지 마음이 공허하다. 시골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명절은 명절다워야 하는데 설 연휴에 폭설이 내렸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버스는 멈추고, 자동차는 느림보가 되었다.
오후에 시간을 내어 차를 마시고, 책을 읽는다. 간간이 드라마도 보고 뉴스 소식도 접한다. 명절이면 허리 아프도록 상을 차리고 치워야했다. 며느리에게 내 시간은 없었다. 그런 나에게 폭설이 여유를 안겨준다.
전국에 폭설 소식이 이어진다. 인터넷 카페에는 시댁에서 전을 부치는 소식, 고향을 찾아가는 소식이 들린다. 일찍 갔으면 전을 부치거나 저녁을 짓고 있을텐데 나는 집에서 명절을 보내고 있다. 시골 가려고 선물도 잔뜩 사놓았는데 쌓아놓은 저 선물은 어이하나 싶지만 한시름 놓인다. 고향 가는 길을 가로막은 눈이 내린다. 끝없이 쌓인 눈처럼, 마음에도 무언가 고요히 쌓여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