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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끝, 바람이 분다

by 소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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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이 매섭게 분다. 마치 성큼 다가오는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남쪽에서는 벌써 봄꽃 소식이 들릴 법한데, TV 속 뉴스는 아직도 얼어붙은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어지러운 정국을 의식하라는 듯이 바람이 매섭게 불어댄다.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을 지나고,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를 지났지만 봄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광양에서는 지금쯤 매화 꽃봉오리가 봉긋 맺혔을까? 3월 중순이면 광양매화축제가 열리곤 했지만 우리는 늘 2월에 그곳에 갔었다. 이른 봄을 만끽하고자 찾아든 사람들의 행렬에 밀려 찬 바람을 맞으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


해마다 2월이 되면 내 마음은 어느새 남해의 따듯한 햇살이 비치는 곳으로 달려간다. 이르게 봄을 맞고 싶은 마음이 나를 재촉하곤 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기약이 없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는 아이가 있으니 이제 가족여행은 머나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분무기를 들고 식물들을 살핀다. 정적이 무료해지면 유튜브로 지나간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그러는 사이 따스한 햇빛이 도둑처럼 거실로 슬금슬금 기어든다. 아이들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다 싶으면 햇살이 드는 창가를 찾아든다. 아파트 안에 버스가 오가고,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걷는다. 바라보고 있으면 봄날씨처럼 느껴져 가벼운 옷을 입고 뛰어나가고 싶어진다. 그 거짓같은 풍경에 속아 나가보면 피부에 와닿는 차가운 공기에 온 몸이 한껏 움츠린다.


오늘도 나는 그 햇살에 속았다.


달력은 봄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막바지 추위가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올해 겨울은 그 어느 겨울보다 마음이 아리고 슬펐다. 사는 것은 점점 더 풍요로워지는데, 마음은 오히려 궁핍해져 간다.


언제까지나 어두운 터널인 줄 알았지만 어느새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는 말처럼 우리에게는 봄이 올 것이다. 계절이란 그렇게 여지없이 오고가는 것이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도, 봄은 어김없이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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