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되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는 셸리 리드의 장편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고 있다. 이번 주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는 날씨를 핑계삼아 두문불출이다. 하린 시집을 읽으면서 시 한편을 필사하고, 식탁에 앉아서 책을 펼쳐든다.
뱀처럼 둥지에 또아리를 튼 두 아들은 학원 갈 때만 세상 밖으로 나온다. 너무 조용해서 방문을 열어보면 각자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다. 방학이라고 공부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꿈쩍도 하지 않고 방 안에만 있는 것이 안타깝다. 사춘기는 터널처럼 길어서 엄마는 그저 밖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나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여느 하루와 마찬가지로 소소한 일상이 이어진다. 구피에게 먹이를 주고, 분무기를 들고 식물에 물을 칙칙 뿌리면서 식물의 상태를 살핀다. 시든 잎은 떼어내고 스파트필름이나 이디안텀은 물받이에 물을 보충해준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실내에 식물을 들일 때 걱정을 했었다. 식물에게는 물과 햇빛도 중요하지만 통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거실에서 식물이 잘 살 수 있을까 우려하며 겨울동안 식물을 지켜봤다. 그 마음은 내 두 아들을 지켜보는 마음이기도 했다.
라디오를 듣다가 DJ의 멘트가 길어진다 싶으면 유튜브로 지나간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책을 반납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책을 읽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마음에 남는 구절을 필사하면서 책을 읽다가 좀 더 빠르게 책을 읽어나간다.
콜로라도 고지대의 숲과 강을 배경으로, 빅토리아라는 한 소녀의 사랑과 성장을 다루고 있는 <흐르는 강물처럼>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문장들을 읽다가 내가 멈춘 순간은 맥스와 루카스라는 두 아들이 등장했을 때였다. 잉카 테이트가 숲의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에 등장하는 두 아들의 성장기록을 보면서 내 두 아들이 떠올랐다.
보고만 있어도 힘이 되어준 나의 두 아들이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한때는 아기였고, 한때는 유아였고, 한때는 초등학생이였던 두 아들이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소설에 나온 것처럼 청소년기를 거치고 청년기를 거치고 어느새 남자가 되어갈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니 왠지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이 아이들도 소설에 나온 그 아이들처럼 언젠가는 새처럼 둥지를 떠나가겠지 하고 생각하니 울적하다.
우리는 하루 하루,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순간 순간 인생의 가르침에 허리를 구부리고, 때로는 다리가 꺾여 쓰러질 때도 있지만 강물처럼 그렇게 흘러간다. 조금씩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없애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새 하루 해가 지고 노을이 지더니 어둠이 찾아든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 도시의 불빛만이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반짝거린다. 소설 속에서 20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처럼 나와 아들 사이에도 그 세월이 흐르고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인생도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