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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머문 어느 하루

by 소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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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로 따사로운 햇살이 슬금슬금 기어 들어온다. 오랫만에 창문을 여니 상쾌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햇볕을 받으며 기지개를 켜듯 초록잎들이 한층 더 빛을 발한다. 선풍기를 끌어와 식물들 정면에 두고 미풍으로 돌린다. 선풍기가 달팽이처럼 느리게 식물을 향해 바람을 일으킨다.


오늘도 별다를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커피를 한 잔 타와서 창가에 서본다. 째깍째깍, 고요 속에서 시계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조금씩 콩닥이기 시작한다. 시민정원사 발표날, 의식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


조용한 음악을 틀고 시집을 가져와 필사를 한다. 아무 것도 없는 무지노트에 갈색 펜이 흔적을 남긴다. ‘가난은 왜 이리 까만 건지 담장을 뛰어넘는 바람에게 묻네’ 시인이 읊는 그 가난이 나의 마음에도 꾸덕꾸덕 베어든다.


문득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이다. 마음이 분주하지만 하루는 천천히 흐른다. 기다리는 소식은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오듯 반가운 소식인지 알 수가 없다.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린다. 몸도 마음도 분주하게 돌린다. ‘올해 안되면 내년에 다시 해보지 뭐.’ 나를 토닥이는 목소리도 내보지만 마음은 쉽사리 접히지 않는다.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해본다. ‘바쁘게 있으면 시간이 잘 가겠지’ 하면서 외출할 준비를 한다. 그때 띠리릭 문자가 온다. 반가운 소식에 기쁘면서도 이게 뭐라고 그리 기다렸나 싶은 마음이 든다.

버스를 기다리며 왔다갔다하는 내 발걸음이 가볍다. 봄볕이 내리쬔다.


“우리 산책할까?” 함께 나온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파트 단지를 짧게 돈다. 아이들은 쌍둥이처럼 붙어서 엄마 뒤를 느리게 따라온다. ‘이번 주말에는 산이라도 갈까?’ 산이든, 둘레길이든 어디든지 가서 따스한 햇살을 쬐며 걷고 싶은 날이다.


노란 마을버스가 저만치 다가온다. 얼른 줄을 서고 버스에 오르니 빈 좌석이 많이 보인다. 아이들은 뒷좌석에 앉고 나도 빈 자리에 앉는다. 창 밖으로 느긋한 풍경이 흐른다. 알게 모르게 봄이 오고 있다.


오늘도 소소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을 맞는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리고, 내일을 조용히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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