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을 걷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봄의 노래가 들렸다. 새소리도 한층 더 가벼워져서 경쾌한 곡을 연주하듯 내 발걸음에 리듬을 실어주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꽃눈이 통통하게 맺혀서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언제까지나 겨울일 줄 알았는데 봄은 소리도 없이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다.
3월 초까지만 해도 흰눈이 흩날려서 봄은 아직 멀리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절은 또 여지없이 흘러가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주말을 보내느라 무거운 발걸음을 떼면서 인생의 계절을 생각해본다. 바싹 말라서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가지에 초록빛 물이 한껏 올라 있었다. 연노랑 봉오리를 맺은 산수유 나무도 보이고, 벚꽃 나무에도 꽃망울이 맺혔다.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연분홍 치마를 흩날리고 싶은 봄이다. 박새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가볍게 날아오른다. 나뭇가지에 수액이 한껏 올라서 ‘나 살아 있었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자연은 겨울에도 쉬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 밤, 고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를 기숙사로 떠나보내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 이유를 한 가지로 정리할 수는 없었다. 안타까움, 미안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내 속에 소용돌이를 일으켜서 나를 흔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조금 부은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은 늘 그대로의 일상이었다.
화분에 물을 주고, 구피에게 먹이를 주고, 아이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아이를 배웅한다. 늘 동생과 함께 하던 형의 모습이 아른거려 눈 앞에 물결이 찰랑이게 했다. 떠나간 아이의 방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침대 커버를 벗긴다. 아이의 체취가 코 끝을 스치자 울컥하는 마음이 생겨서 얼굴을 살짝 돌렸다.
세탁기를 돌리고 자리에 앉아 시 한편을 필사하고 책을 읽는다. 정원에는 여러 식물을 심고 키우는 데 처음에는 경쟁 구조가 되어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함께 성장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글을 읽으니 아이가 떠올랐다.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고 고등학교에도 적응하느라 힘들겠지만 때로는 경쟁도 하고 의지도 되면서 그렇게 조금씩 성장할 것이다. 문득 아메리카 대륙에서 서식하는 맹금류 콘도르가 떠올랐다. 콘도르가 새끼 콘도르를 비행 훈련시키고 떠나 보내는 다큐멘터리 생각이 났던 것이다.
시나브로 봄이 오고 있다. 머지않아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눈부시게 필 것이다. 연둣빛, 초록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겨우내 움츠렸던 모든 생명이 기지개를 켜고 봄을 맞을 것이다. 우리 아이도, 나도 봄꽃처럼 한껏 피어나는 봄이 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