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점심을 먹고 드라이브를 했다. 따스한 햇살이 식곤증을 불러 일으키니 잠이 스르르 왔다. 남편은 운전을 하고 큰 애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뒷좌석에 앉은 나도 닫히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졸기 시작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에 집 나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주말 내내 밥상 차리고 치우는 되돌림표만 하다가 지친 참이였다. 안되겠다 싶어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보자고 했다. 드라이브하면서 온 가족이 자는 바람에 운전하는 남편만의 드라이브가 되어버렸다.
감긴 눈을 떠보니 창밖으로 겨울풍경이 흘렀다. 보이는 곳마다 흰 눈이 쌓여있었고, 겨울 햇살이 눈 위로 부드럽게 쏟아지고 있었다. 남편이 유명하다는 카페거리에 가보자며 차를 몰았다. 하지만 그 카페거리는 생각과 달리 한산하기만 했다. 경기 불황이라더니 사람들로 붐빈다는 그 카페거리도 치명타를 벗어날 순 없었나 보다. 휘황찬란한 조명이 무색하게 젊은 사람 몇 명만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우리는 간 길을 되돌아 집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다가 눈에 띈 어느 카페로 무작정 찾아들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그 카페는 원래 문을 닫은 음식점이었다고 했다. 거미줄이 늘어진 폐가 수준의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건물의 변신에 남편은 놀라워했다. “원래 이 자리에 다른 건물이 있지 않았나요?” 카페에 들어선 남편이 주인에게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남편은 허름했던 건물이 리모델링을 거쳐 멋진 카페로 탈바꿈 한 것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빵과 음료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를 찾아들었다. 카페 통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였다. 야트막한 산이 보이고, 그 앞쪽으로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 벌판에는 비닐하우스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었다. “우리도 이런 건물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남편은 그 공간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진즉에 알았으면 자기가 어떻게 해봤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낮게 흐르던 음악이 서서히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익숙한 잔나비 음성이 흐르고 내 마음도 그 나른한 목소리에 휘감겨 서서히 풀린다. 아이들은 말없이 빵을 먹고 음료를 마신다. 사춘기 두 아들은 말이 없다. 남편과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일상을 나눈다. “나중에 이런 사무실 하나 얻어서 커피도 마시고 가끔 친구도 불러야지!’ 남편은 퇴직 후 유유자적하며 쉼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가보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허공을 향해 소망을 말해본다. 식탁이 아닌 나만의 공간을 언젠가 가졌으면 좋겠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나는 어느덧 실내에 있는 식물들로 시선을 옮긴다. 찬바람을 쐬었는지 얼어있는 개발선인장과 금전수도 보이고 우리집에 있는 콩고와 고무나무도 보인다. 나는 일어나서 카페를 둘러본다. 시멘트를 바른 벽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요즘 카페의 추세인가 보다. 카페를 해서 돈을 벌 생각은 없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어떻게 꾸밀까 가끔 상상을 하곤 한다.
카페에서는 아무 말 안하고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음악이 낮게 흐른다면 음악 속에 머물 수 있고, 조용한 곳이라면 적막 속에 잠길 수 있다. 머릿속을 오가는 생각들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 차 한잔을 마시며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곳. 그래서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싼 차값을 지불해도 아깝지 않은 것은 그곳이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있는 장소이기 때문이 아닐까? 느림 속에서 나를 만나는 시간, 그래서 카페는 오늘도 내게 특별한 장소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