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시작되는 계절, 봄이 시작되었다. 겨울의 끝자락인지라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지만, 봄은 어느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개학을 앞두고 새학기 준비로 바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그만 가야한다고 짜증이 심해진 겨울이지만 언젠가 가야할 때가 되면 봄에게 계절을 양보할 것이다.
주말 아침, 늦잠을 자는 아이들을 깨워서 서둘러 아침을 먹는다. 올해 고입을 앞둔 아이가 있어서 온 가족이 고교학점제 강의를 들으러 서두른다. 매번 대입 입시가 달라질 때마다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학부모였다. 올해부터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반영되는 고1을 앞둔 학부모인지라 이런 강연을 찾아서 들은 것이 몇 번인지 모르겠다.
“엄마, 나 진짜 꼭 가야 해? 나만 빼고 다 가면 안 돼?” 올해 중3이 되는 작은 아이가 툴툴거린다. 내년에 고등학생이 된다고 느긋하겠지만 너도 가야한다고 데리고 집을 나선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아이들은 강의를 들으며 형광등 불빛아래 졸고 있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강의를 듣고 사진을 찍는다. 너무 앞자리에 앉는 탓에 강연자 눈치가 보여 조는 아이 손을 살며시 잡는다. 아이가 번쩍 눈을 뜨더니 나를 쳐다본다. 나는 눈을 찡긋해보인다.
강의를 듣고 교복을 찾으러 간다. 이번에도 자신은 왜 가야하느냐고 작은 아이가 불평 섞인 말들을 쏟아낸다. “이젠 네가 해야지.” 혼자 가라니 쭈뼛 거리는 큰 아이와 함께 교복을 찾고 서명을 한다. 교복을 찾았으니 명찰을 달아야 한다.
호숫가를 떼지어 다니는 오리 가족처럼 오늘 하루 우리 가족은 여기로, 저기로 몰려 다닌다. 작은 아이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따라다닌다. 골목에 차를 주차하고 명찰을 달러 간다. 문을 열자 긴 줄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오신 분들은 여기에 적어주세요.” 들이미는 종이에 학교명과 이름을 적는다. 작은 가게 안이 인파로 붐빈다. 줄을 서서 앞뒤로 두리번거리니 우리와 같은 가방을 들고 선 사람들이 보인다. 같은 학교라는 게 반갑지만 아는 체 하지 않는다.
몇년 전에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느즈막히 다시 들렀다. 이번에는 조금 일찍 온 탓인지 기다리는 시간이 그때보다는 길지 않았다. 더러는 아이를 동반하고, 더러는 아빠나 엄마 혼자서 아이들 교복을 들고 서 있는 학부모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말은 안 했지만, 왠지 모르게 동지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 교복을 맞추고, 찾으러 가고, 명찰을 달면서 봄을 느낀다. 봄은 어디에 있는 건지 겉옷을 여미게 하는 겨울 추위가 매섭지만 학생을 둔 엄마에게는 새학기가 봄을 느끼게 한다. 이제 일주일 뒤면 개나리 밑에 있는 병아리들처럼 학생들이 학교로 향할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 모든 아이들의 설레는 첫걸음을 응원해본다. 아이들과 함께 봄이 올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