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외가집은 꽤나 큰 기와집이었다. 마을로 들어서면 청색 기와를 얹고 있는 집이 보였는데 그 집이 바로 외가집이었다. 담장 대신 탱자나무를 두르고 있어서 뒷문을 열면 작은 새들이 탱자나무 사이를 오가며 시끄럽게 소리를 내곤 했었다.
기와집 마당 앞쪽으로는 포도나무들이 행진하는 병정들처럼 가지런히 줄을 맞추고 있었다. 포도나무 사이로 사과 나무와 복숭아 나무가 있었고 그 밭을 거슬러 구석으로 가면 딸기밭이 숨바꼭질하듯 나타났다. 나는 봄마다 외할머니와 그 작은 딸기밭에 앉아서 탐스러운 딸기를 따먹곤 했었다.
아궁이 옆에는 외양간, 외양간 옆에는 하늘 향해 높이 솟은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봄이면 떨어진 감꽃을 주워 감꽃 목걸이를 만들고, 가을이면 기다란 장대로 감을 땄다. 감나무를 지나 탱자나무가 끝나는 곳에는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담장이 이어졌고, 돌담과 돌담 사이에 싸리문이 뻐걱거리며 바람에 흔들렸다.
외할아버지는 소를 몰고 들로 나갈 때 이 싸리문을 이용했다. 할아버지가 소를 몰고 들로 나가면 집에는 할머니와 어린 나만 남았다. 감나무 옆에는 긴 장대가 놓여져 있었다. 스산한 늦가을이 되면 감나무에는 감잎도, 감도 달려 있지 않았다. 내 키보다 더 기다란 장대를 휘둘러도 딸 수 없는 감 몇 개만이 꼭대기에서 나를 놀리듯 대롱대롱 흔들렸다.
“저건 말이지. 까치밥이라고 하는 거여. 겨울이 되면 새도 먹고 살아야 허니께 냉겨놓은 거란다.”
할머니는 감나무가 아니라 하늘을 향하듯 위를 쳐다보며 말하곤 하셨다. 나는 심심할 때마다 높은 가지 끝에서 대롱거리는 감을 보며 새가 언제 날아오는지 살폈다. 가끔 까치가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 감을 쪼아먹기도 했다. 시골은 심심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더 심심해져서 나는 자꾸만 감나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밖에 매어놓은 소가 ‘음메’하면서 어설픈 울음을 울 때도 있었다. 멀찌감치 서서 따스한 가을햇살을 받고 있는 소를 보고 있을 때면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네.” 하고 달려가면 할머니는 마루 위에 놓인 찬장문을 열고 홍시 하나를 꺼내주었다.
“요거 먹거라.” 나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았다. 찬장 안에 넣어둔 것들은 외할아버지의 간식이었다. 틀니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것을 입에 넣고 소가 여물을 씹듯이 오물거리며 홍시를 드시곤 하셨다. 찬장 안에는 할아버지가 겨우내 요기할 간식들이 쟁여져 있었다. 홍시도 있고, 이모가 들고 온 박카스도 들어 있고, 사탕도 있었다.
할머니는 가끔 할아버지의 간식을 나를 불러서 몰래 주곤 하셨다. 홍시도 그랬고, 박카스도 그랬다. 어둑한 부엌으로 불러서는 “요거 몰래 먹어라!” 하면서 박카스를 쥐어주었다. 그때 마셨던 박카스의 맛을 나는 오래오래 잊을 수 없었다. 할머니가 주신 홍시를 반으로 갈라서 입을 오물거리며 먹었다. 늦가을의 햇살이 우리 얼굴을 따스하게 비춰주었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어린시절의 기억이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떠오른다.
어른이 된 지금도 홍시를 한입 베어 물면, 어린 시절 외갓집의 푸른 기와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다정한 미소가 달빛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그리고 커다란 감나무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