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안개가 낀 듯 온 세상이 하얗다. “간밤에 눈이 왔나봐.”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말을 건넨다. 아이들 방학이라고 마음이 풀린 나는 비몽사몽 상태로 아침상을 차린다. 남편이 습관처럼 TV를 켜고 뉴스에서 마음을 할퀴는 소식이 전해진다.
새해가 밝은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나고 보름이 날쌘 제비처럼 날아가버렸다. 마음이 헛헛해서 하릴없이 창밖을 보니 그제서야 쌓인 눈들이 보인다. 아이들을 깨울까 하다가 급한 마음을 접는다. 라디오를 켜니 G선상의 아리아가 이 아침에 어울리는 분위기로 집안을 슬금슬금 기어다닌다. 문득 커피 생각이 나서 믹스커피를 타오고 윤동주 시집을 꺼내 필사를 하기 시작한다.
갈색펜으로 글씨를 쓰니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라디오에서는 디제이의 낮은 음성이 흘러나오고, 이어서 베토벤의 음악이 공간을 채운다. 필사를 끝내니 얼마 전에 온 문자 생각이 나서 노트북을 가져온다. 노트북을 켜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강사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온다.
작년까지만 해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새해가 되자 괜히 주저하게 된다. 자신감은 어디로 도망가버렸는지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 앞에 숨어버리고만 싶다. 일을 하려면 시간을 내야 하는데 시간을 내는 것이 귀찮아지니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핑계를 대면서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사이의 갈등이다.
아직 모집 전이지만 마음이 부표처럼 헤매고 있다. 조건에 자격증이 있길래 자격증이 있는지 허겁지겁 찾아보기도 한다. 3월에 심화과정이 개설된다는데 교육을 계속 들어야 할 지도 고민을 해본다. 작년에 나는 문해교육사 과정을 수료하고 아파트 경로당에서 20시간 실습을 했다. 올해 심화과정이 예정되어 있는데 강사모집 광고가 떴다. 물론 주강사 자격은 되지 못한다. 할 수 있다면 보조강사나 실습강사 정도일텐데 그럼에도 주저주저 하고 있다.
하루종일 마음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떠다녔다. 그런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안개가 깔린 듯 창밖 세상이 뿌옇게 흐려 있었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열정이라고 한다면, 그 열정에 발을 디딜까 말까를 고민하는 마음을 망설임이라고 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열정이 예전 같지 않아 자꾸만 망설이게 된다. 한 살이 뭐라고! 사무엘울만은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일흔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고 했으니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일 것이다. 겨울처럼 움츠러진 마음을 일으키고 또다시 도전정신을 가져야겠다. 지금도 나는 충분히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