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에게 가혹한 겨울이 왔다. 봄. 여름, 가을은 그냥 지낼만 해서 뭉기적거렸다면 겨울은 차원이 다르다. 차가운 바람에 구멍뚫린 창호지처럼 마음에 뻥하고 구멍이 뚫린다. 그렇게 마음이 얼어붙는 계절이 시작되었다.
아이 학원 문제를 의논하는데 남편이 긴 한숨을 내쉰다. 집안 형편으로 고교 시절 학원을 다닐 수 없었던 그는 아들은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었다. 그런 바램과 달리 손바닥 뒤집듯 빤한 월급에 구멍이 생기니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장을 보고 집 근처 논뷰가 으뜸인 카페에 바람쐬러 가보기로 한다. 여름까지 상큼한 연초록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곳이였다. 겨울이 되어 찾으니 황량했지만 시야가 탁 트여 마음이 밝아졌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눅눅해진 마음을 펼쳐놓으면 보송보송해질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늘따라 사람 하나 없이 한산하다.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네요?” 하고 묻자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가 봐요.”란 대답이 돌아온다. 주말에 가면 몇 테이블은 꽉차 있었는데 겨울이라 그런가 생각하며 어떤 차를 마실지 고민한다.
오설록 보이차 한 잔을 들고 겨울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로 향한다. 아무도 없는 실내에 음악이 흐르고 있다. 창 밖에는 참새들이 쪼르르 무리지어 날아다닌다. 앙상한 과실 나무는 바람에 푸덕푸덕 흔들리고 지나가는 고양이마저 그대로 그림이 된다.
차 한모금을 마시니 입 안 가득 산뜻한 향기가 감돈다. “향 좋지?” 남편은 차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구겨졌던 얼굴이 햇볕을 닮아가며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통창을 통과하는 햇빛의 온기가 음악에 실려 여기저기 어루만진다. 상처 입은 사람이 있다면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
다들 어떻게 사는걸까? 고만고만한 월급에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사는 것이야 같겠지만 문득 궁금해지는 날이다. 아이 학원 보내려면 얼마라도 적금을 부어야 하나, 아니면 직업 전선에 뛰어 들어야 하나. 등 따습고 배 부르면 행복하다고 여겼는데, 겨울 바람처럼 무거운 마음도 결국은 지나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