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쌓인 사려니 숲길을 걷다가 되돌아 나왔다. 마침 점심 시간이라서 점심을 먹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자장면을 먹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청을 받아 네비게이션을 검색했다.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남편이 차를 몰았다.
몇 분이나 이동했을까 주차장에 즐비한 차들이 보였다. “저기는 어디지?” 여행할 때마다 차가 서있는 곳을 유심히 보게 된다. 그 건너편에 중국집이 있기에 우리는 네비를 무시하고 그 가게로 찾아들었다.
각자 먹고 싶은 것으로 주문하고 주인아저씨에게 “저긴 어딘가요?” 하고 물었더니 삼다수 숲길이라고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을을 끼고 들어가면 숲이 나온다고 했다. 잘 알려진 사려니 숲길에 비해 한적하게 걸을 수 있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중국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삼다수 숲길로 들어섰다. 삼다수 숲길은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던 임도를 정비해서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탐방로이다. 그래서인지 걷는 내내 차들이 지나 다닐 수 있는 임도가 꽤 길게 이어졌다. 원래 이 지역은 말 방목터이자 사냥터였다. 마을을 끼고 임도를 지나자 숲이 나타났다. 잘 다져진 숲길 앞에 이정표가 있었다.
제주도하면 삼다수 생수가 떠오른다. 그 말처럼 삼다수를 생산하는 제주특별자치도 개발공사와 교래리 주민들이 숲 사이에 길을 닦아 ‘삼다수숲길’이란 이름을 붙혔다. 교래 곶자왈도 좋았는데 한적한 삼다수숲길도 인상깊었다.
삼다수숲길은 1코스, 2코스, 3코스로 나눠져 있었다. 1코스는 5.2km, 2코스는 8.7km의 완주코스로 봄에는 복수초군락이 아름답다고 한다. 이정표를 읽어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분재형 숲으로 경관미와 난대 낙엽 활엽수림의 가치를 인정받아 ‘제1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천년의 숲 부문 어울림상을 수상한 곳이었다.
오후인지라 3코스를 완주하기에는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2코스를 돌기로 했다. 완주 코스를 확인하고 2코스로 접어들었다. 2코스는 목련자생지, 천미천을 지나 단풍나무 군락지를 끼고 돌아 나오는 코스였다.
숲길로 들어서니 곶자왈처럼 천연의 숲이 나왔다. 기분이 좋아지는 숲 특유의 냄새가 났다. 한적한 숲길로 하늘 향해 뻗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간간히 내린 눈이 쌓여 있었고 숲에 우리만 있는 듯 고요가 함께 하고 있었다. 이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서 동영상을 찍는다. 동영상 속으로 사랑스런 두 아들이 사이좋게 걷고 있었다.
숲길을 한참동안 걷다보니 2코스(테우리길) 이정표가 나왔다. “조금 일찍 왔으면 3코스 완주하는 건데!” 산에 가면 무조건 정상을 밟아야 하는 남편이 아쉬운 소리를 한다. 곶자왈에는 고사리가 많이 보였는데 이곳에는 조릿대가 많이 보였다. 조릿대가 바람에 쓸리며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눈 쌓인 숲길을 사각거리며 걸으니 겨울의 한가로움이 느껴졌다. 순백의 눈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낸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천미천을 만든 용암 단면을 볼 수 있는 천미천의 용암 안내판이 보여서 잠시 멈춰 읽어본다. 이 하천은 점성이 꿀처럼 높은 용암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씌여져 있었다.
2코스를 돌아 나오는 숲길에는 눈이 더 쌓여 있었다. 이렇게 좋은 숲인데 생각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않나보다. “숲길 걸으니까 좋지?” 남편에게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매일 답답한 사무실에만 있다가 공기 좋은 숲에 있으니 기분이 좋은지 남편 발걸음이 가볍다.
따스한 햇빛으로 인해 눈이 녹아서 내려오는 길이 질퍽였다. 길 가장자리를 딛고 한참을 내려오니 삼나무 숲이 보인다. 경찰숲터라는 이 곳은 1975년부터 제주경찰이 40여 년동안 허허벌판에 16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곳이라고 한다. 곧게 뻗은 삼나무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펼쳐져 있었다. 여행의 고단함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삼나무 숲길을 지나 작은 오솔길로 들어서니 참 좋은 숲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오늘 그 중국집에 가지 않았다면 이곳을 몇 번이나 지나치면서도 삼나무숲길로 들어서진 않았을 것이다. 여행하면 이름난 곳만 검색해서 찾아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우연히 알게 된 이런 곳은 정말 보석같은 선물이다. 이런 보석을 많이 만날 때 여행의 추억은 더 오래 간다.
여러분도 이런 숨은 보석 같은 여행지를 찾아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