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선흘곶자왈, 태고의 숲을 거닐다

by 소금별 Jan 19. 2025

제주에 있는 독특한 용암숲은 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숲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제주도에 가면 숲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에서도 가보지 못한 곶자왈을 찾다가 선흘리에 있는 비밀스런 장소를 알게 되었다.


불모지였던 땅에 시간이 흘러 나무와 덤불이 어우려져 우거진 숲이 되었다.  인위적인 영향이 전혀 없이 오로지 자연과 시간의 힘으로 만든 곳이 바로 곶자왈이다. 선흘곶자왈은 동백동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다. 


타지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던 이 곳이 생태적 가치와 특이한 지형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아는 사람들만이 찾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입구가 잘 알려진 다른 장소와 사뭇 달랐다. 주차장이 따로 없고 멋드러진 이정표도 없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희귀 동식물이 많았고 그렇게 생태적 가치로 인정받은 숲이었다.  식물 529종, 희귀식물 24종, 동물 53종, 법정보호종 7종이 이곳에 산다. 제주고사리삼, 개가시나무, 순채, 긴꼬리딱새, 팔색조, 원앙, 두견이 등 희귀한 동식물이 산다고 했다.


우리는 입구를 찾아 길을 들어섰다. 두 갈래 길이 있는데 둘레길처럼 돌아서 나오는 길이라 어느 곳으로 출발해도 괜찮다. 위로 위로 뻗은 빽빽한 나무들이 하늘을 막아 햇볕이 들어오지 못한다. 대낮인데도 어둑스레한 울창한 숲을 걷는다. “와, 이런 숲은 처음이네. 여름에 오면 시원하겠다.”  좋은 숲을 만난 남편의 발걸음이 가볍다.


울창한 숲을 걷다보면 동백동산 이정표가 나온다. 동백동산은 선흘리 동쪽에 있으며 그 면적이 넓어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동백나무 외에도 종가시나무, 생달나무 등 난대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가 함께 자란다고 적혀 있었다. 이곳에는 고유 양치식물인 제주고사리삼이 자생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찾을 수 없었다.


동백동산을 지나 한참을 걸으니 자그마한 습지가 보인다. 이곳은 먼물깍 습지로 먼물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고, 깍은 끄트머리란다. 갑자기 지난 번에 갔었던 쇠소깍이 떠올랐다. 먼물깍은 과거에는 생활용수나 가축용수로 이용되었는데 지금 이 습지 주변에는 희귀동물과 식물이 있어서 생태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어디까지 걸어가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어서 위에서 내려오던 산행객에게 길을 물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상돌언덕이 있는데 거기까지 가서 돌아와도 되고 한 바퀴 돌아도 된다고 했다. 


일러준대로 산길을 오르니 돌이 덮인 언덕이 나왔다. 상돌언덕은 동백동산 곳곳에 분포하는 용암언덕 중에서 가장 큰 규모란다.  용암의 앞부분이 굳어지면서 가운데 부분이 빵껍질처럼 부풀어 올라 만들어진 언덕이라니 너무 신기했다.


우리는 상돌언덕에서 되돌지 않고 조금 더 걸어가보기로 한다. 먼물깍 습지를 지나 상돌언덕을 돌아 한참을 걸어가니 도틀굴이 나온다. 이곳은 4.3유적지라고 하는데 그 시절 이곳에서 학살이 자행되었던가 보다. 차마 마음이 아파서 더 들어가보진 못했다.


몸을 키우기 보다 키를 키운 나무들은 이곳에서 나름대로의 생존법을 터득했다. 햇볕이 들지 않으니 키가 낮은 나무는 살기가 어렵다.  덤불은 나무를 휘감고 하늘을 향해 전진한다. 한겨울인데도 나무에는 초록잎들이 찰랑거린다.


도틀굴을 지나 내려오니 정수장이 보이고 선흘분교가 나온다. 이날 우리가 걸은 거리가 4Km는 넘는 것 같다. 그 길을 걸으며 사춘기 아들이 슬며시 엄마 손을 잡아준다. 잡은 손으로 아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멀어진 마음의 거리가 유년의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행복하다. 신나게 아들 손을 흔든다. 여행은 이렇게 한 뼘 더 가깝게 한다.

이전 08화 제주의 숨결을 걷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