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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시간, 교래 곶자왈을 걷다

by 소금별 Jan 14. 2025

교래자연휴양림에 소금처럼 빛나는 눈이 가득 쌓였다. 누가 밟기 전에  고혹적인 눈세상에 내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아침이다. 눈길이 미끄러울 것 같아서 생태관찰로 입구에서 아이젠을 착용한다. 솜이불처럼 폭신한 눈들이 가득한 숲이 나를 부른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걸으니 발걸음을 뗄때마다 사각사각 눈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생태관찰로 1.2km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름모를 나무들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교재 곶자왈이다.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 지형이 만들어지면서 나무, 덩굴식물 등이 뒤섞여 원시림을 이룬 곳이다. 숲을 뜻하는 제주도 ‘곶’과 덤불을 뜻하는 ‘자왈’을 합쳐 만든 제주 고유어라는 것을 작년에 알았다.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곶자왈을 빼놓을 수 없었다. 나무와 덩굴식물, 양치류 등이 우거져 있는 원시림같은 곶자왈은 매력적이다. 북방한계 식물과 아열대기후의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숲은 갈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곶자왈은 제주 중산간 지대에 넓게 형성되어 있고, 오늘 찾은 곳은 교래 곶자왈이다.


아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곶자왈을 걷는다. 남편은 곶자왈의 모습에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재촉한다. 사춘기 아들은 사진을 거부하고 우리 부부만 신이 났다. 둘이 번갈아 사진을 찍으며 걷는다. 이끼 낀 바위, 숲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덩굴식물, 하늘 높게 뻗어있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마음이 멈춘다.


솜사탕같은 눈속에 숨어있는 양치식물이 초록초록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은밀한 공간이 비밀을 간직한듯 숨을 쉬고 있다. 바위 위에 요염하게 뿌리를 걸치고 있는 나무앞에 멈춰선다. 뿌리 하나는 바위를 감싸고 있고 다른 뿌리는 바위를 뚫고 땅으로 향하고 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버텨야 이렇게 바위보다 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 숲의 강인한 힘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멀찍이 덩굴식물이 나무를 휘감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생명이 얽히고 설킨 숲에서 살기 위해 큰 나무를 타고 위로 위로 향하는 그 강인한 생명력이 놀랍다. 덩굴식물이 휘감은 곳은 잘록하게 들어가고 감지 않은 곳은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감긴 나무도 살기 위해 이래야 했을 것이다. 나무와 덩굴식물이 마치 한 몸인양 서로를 의지하고 이 숲에서 살아남았다.


“엄마, 무슨 소리가 들려.” 아이들이 멈춰 선 곳에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소리가 나는 곳을 찾는다. 분명히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 소리다. ‘딱딱딱딱’ 고요한 숲에 이 소리만 요란하다. 저 앞에 딱따구리 두 마리가 나무를 쪼고 있었다. 몸 색깔이 알록달록한 것이 오색딱따구리였다. 우리는 발길을 멈추고 딱따구리의 움직임을 따라 가느라 망부석처럼 멈춰있었다. 오늘도 숲에서 귀한 구경을 했다.


숲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생태관찰로를 돌아 나오는 길, 어느새 눈이 조금씩 녹고 있었다. 비밀스런 숲에 우리만 있다. 아이들은 발자국을 남기며 저만치서 신나게 걷고 있고 우리 부부는 뒤에서 걷는다.  아이들은 자라고 우리는 늙어가고 있다. 오랜세월을 거치면서 원시림을 만든 이 숲에서 그렇게 우리는 세월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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