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들고 산책을 나선다. 빗방울을 머금은 나뭇잎들이 살랑살랑 몸을 흔든다. 꽃을 감추면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아파트 정원을 걷는다.
어느덧 8월이 끝나고 9월이 시작되었다. 간밤에 내린 비가 더위로 몸살을 앓는 숲을 어루만졌는지, 시든 잎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잎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향을 맡으려는지 내 코가 절로 벌름거려졌다.
아파트 정원을 벗어나 공원으로 접어든다. 저 앞에 연분홍 등불을 켠 듯 초록잎 사이로 배롱나무가 보인다. 오므린 잎들 속에 자귀나무 꽃이 살포시 인사를 건넨다. 8월에는 새색시의 고운 한복 저고리처럼 분홍색 꽃들이 많구나 생각하며 발걸음을 뗀다.
숲길 한 켠이 아무렇게나 밀어버린 머리처럼 듬성듬성하다. 내 눈은 그곳을 보며 지난 여름날을 떠올린다. 그러고보니 여름내 기세를 떨쳤던 토끼풀이 보이지 않는다. ‘아, 제초제를 뿌렸구나!’ 뜨거운 햇볕을 머리에 지고 군무라도 치듯 세 잎, 네 잎으로 땅을 덮던 그 기개는 어디 가고, 제초제에 저렇게 무릎을 굽혔을까 탄식이 새어 나왔다.
잠시 숨을 고르던 비가 양동이로 물을 붓듯 쏟아진다. 우산을 야무지게 받쳐들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니 복잡하던 머릿속이 실타래 풀리듯 사르르 풀어진다. 빗속에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모든 것이 걷히고 빗소리와 산책로의 고요함이 흐른다.
자엽을 달고 있는 매자나무, 자그마한 연분홍 꽃을 길게 드리운 꼬리조팝나무가 보인다. 그 사이로 뒤늦게 노란꽃을 피운 황매화도 눈에 들어온다. 까만 열매를 달고 있는 저 나무 이름은 뭐지? 생각날 듯 나무 이름이 머릿속을 떠다니지만 결국 그 이름을 찾지 못한 채 길을 계속 걷는다.
올해 정원 공부를 하면서 식물에 더 관심이 생겼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관심을 가지니 알게 되었고 또 보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도 마을정원이 하나둘 생기고, 그런 초록 공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언젠가 우리 곁에도 작은 마을정원이 생겨, 빗속 산책길에서 더 많은 나무와 꽃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