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숲정원 관리법을 배우러 길을 나섰다. 실습 장소는 이화공공하수처리장. 버스에서 내려 낯선 장소를 찾아간다. 길 안쪽으로 울창한 나무와 함께 숲이 보인다.
“여기 이런 곳이 있었네.” 하수처리장은 빼곡한 숲정원 깊숙이 있었다. 혐오시설이라 밖에선 보이지 않게 식물로 담을 쌓은 곳, 그곳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나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에서 잠시 설명을 듣고 우비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설명해 주는 교수님을 따라 오리새끼들처럼 몰려다닌다. 아무렇게나 자란 회양목을 지나 수수꽃다리를 만난다. “이 식물은 키가 웃자라서 어른 가슴높이로 잘라줘야 합니다.” “하수처리장을 안 보이게 하려고 나무를 빼곡히 심었는데 이 죽은 가지들 보이시죠?” 그 교수님은 나무도 숨구멍이 있어야 산다며 심을 때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얘기하셨다.
아무 생각 없이 산책했던 길에 죽어가는 나무들이 보인다. 소나무는 너무 가까이 심어서 죽어가고 있었고, 담벼락을 따라 심은 모과나무는 소나무 기세에 크지 못하고 키가 작았다. 열매를 맺지 못한 지가 오래되어 보일 만큼 아파 보였다.
비를 맞으며 오늘 우리가 작업할 정문 쪽으로 향한다. 우비를 입고 있으니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비닐이 스치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정문 쪽으로 걸어가니 열매들이 많이 열려 축 쳐진 대추나무, 빨간 열매가 달리는 산수유나무가 있었다. 우리는 여기를 중심으로 해서 숲을 정리하기로 했다.
예비 도시숲 119 요원들이 무기를 챙긴 듯 장비를 하나씩 챙긴다. 나도 제일 만만한 양손가위를 들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잠시 주춤거린다. 아무렇게나 자라서 정글처럼 빼곡한 숲이 몇 년째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제일 만만한 관목 중에서 철쭉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여러 사람이 철쭉을 에워싸고 있었다. 나도 가세해서 철쭉의 웃자란 부분을 싹둑싹둑 잘랐다. 쓱쓱 떨어지는 가지들에 묵혔던 감정들도 함께 잘려 나간다. 이발사가 이발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 손이 무섭다고 어수선하던 숲정원이 사람들의 손길을 타고 멀끔해진다. 회양목은 무릎 높이로, 철쭉이나 황매화는 가슴 높이로 키가 줄어든다. 양손 가위를 들고 좀 더 예뻐지려고 여기저기 가늠해 보며 쓱싹쓱싹 가지를 자르니 자른 곳들이 발아래로 머리카락처럼 흘러내렸다.
빽빽하던 산딸나무의 숨통이 트이고, 대추나무 가지도 잘려나간다. 사람 키보다 높게 군락을 이루던 무궁화숲도 앙상해졌다. “비도 오는데 이제 좀 그만하시지.” 잘려나간 나뭇가지들을 치우러 시에서 나오신 분들이 한 말씀하신다. 우리의 열정이 너무 지나쳤나 싶어서 일순간 무안해져서 우리는 그만하기로 한다.
보기엔 야멸차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머리카락을 잘라주듯 숲정원도 관리해 줘야 건강한 숲이 된다. 관목들은 다듬어주고, 나무들은 가지를 잘라 공기가 통하게 해줘야 한다. 오늘 숲정원에서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도시숲 실습을 했다. 숲은 사람의 손길을 기억하고, 우리는 그 숲을 통해 다시 숨을 돌린다. 오늘 나는 도시숲 119 요원이 되어 숲에 숨을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