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밤, 남편과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영천 호국원이 나왔다. 그곳은 묘비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나도 나중에 대전현충원이나 이천호국원에 안치될 수 있어.” 남편의 뜬금없는 말에 가만히 있었더니 또 한마디를 한다. “배우자도 합장이 가능하대.” 그 순간 미묘한 감정이 나를 휩쓸고 갔다.
“내 덕분에 국립현충원에 함께 안장되겠네.” 국립현충원이나 호국원에는 국가유공자, 참전용사뿐만 아니라 경찰관이나 소방관으로 30년 이상 근무하면 안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TV에선 한 연예인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참배하고 있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참전용사였다고 한다. 비석과 노랑, 빨강으로 알록달록한 조화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 노년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죽은 후에 깔끔하게 수목장을 할까, 아니면 납골당으로 해달랄까. 대체로 이런 생각만 했을 뿐 땅 속에 묻힐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남편의 말을 듣고 국립호국원에 누워 있을 생각을 하니 부끄러웠다. 나라를 위해 싸운 것도 아니고 목숨을 내건 적도 없는데 수많은 애국자들 속에 잠든 나를 떠올리자니 아찔했다. 그것은 그분들의 애국심에 대한 나의 존경심, 어쩌면 추앙일지도 모른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귓가를 맴돌 것 같아 그곳에 편히 누워 있지 못할 것 같았다.
아직 죽음을 생각하기엔 이르다 싶었다. 그래도 TV 속 묘비들과 남편의 말이 불현듯 내 노년의 자리를 생각해보게 했다. 아이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게 남편 곁에 있고 싶지만 합장은, 글쎄,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나저나 남편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럼 묘비에는 뭐라고 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