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전혀 성탄절 같지 않은 조용한 날이다. 아이들 등교 후 집안일을 간단히 하고 나갈 준비를 한다.
오랜만에 올라간 체중계는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다. 잿빛 하늘이 내 마음처럼 우중충하게 거실창에 드리웠다.
“엄마 갔다 올게.”
책 한 권을 챙겨 들고 나의 식물에게, 구피에게 인사를 한다. 나의 어린 아들에게 건냈던 인사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보살핌을 받는 생명체로 옮겨간다.
아파트 정거장에서 조금 서성대니 버스가 들어온다.‘틱’ 카드를 찍으며 차에 오르니 따듯한 온기가 기분 좋게 전해진다.
그 온기에 냉랭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린다.
‘이 아침에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고,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나도 어딘가로 향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몸이 바빴고, 아이들이 학생이 되니 마음이 분주했다.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 그 경계 어디쯤에서 난 늘 서성였다.
이제 아이들은 내 품에 깃든 아기새가 아니라 둥지를 떠나기 위해 날개짓을 한다.
오늘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둥지를 찾기 위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빈둥지를 지키는 나는, 나만의 세계를 찾기 위해 게을러진 마음을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버스는 흔들리며 도로를 달리고, 나는 내 인생을 향해 한 발 내딛는다.